[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85. 용생구자설(龍生九子說)을 아시나요?

1) 프롤로그


며칠 전 도동서원에서 해설사로 근무를 하던 중에 있었던 일이다. 지역의 한 도서관 교양강좌반에서 문화탐방을 왔다. 해설을 마무리할 즈음 여성 한 분이 질문을 했다. “선생님! 서원 앞에 있는 큰 비석 아래에 조각되어 있는 동물이 거북이에요, 용이에요?” 종종 듣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용생구자설’에서 찾으면 된다. 이번에는 문화유적탐방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지식, ‘용의 아홉 아들 이야기’, 용생구자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2) 9종의 동물들의 모습을 갖춘 동양의 용

우리 전통문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동물을 하나 꼽으라면 용이 빠질 수 없다. 민간에서는 용을 구름과 비를 다스리는 수신(水神)으로, 불교에서는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으로, 도교에서는 신성한 자연신으로, 유교에서는 성인 혹은 절대 권력자로 표현되곤 한다. 이처럼 유·불·선을 막론하고 동양의 용에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 같이 용을 신령스런 존재, 인간에게 유익한 존재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는 용을 악의 근원으로 보고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중동이나 서양문화권의 시각과는 완전히 상반된 것이라 흥미롭다. 동양에서는 용의 생김새를 9종의 동물들의 특징적인 모습을 골고루 갖추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래는 『광아』라는 중국 문헌에 나타난 용의 모습이다.

용은 비늘 있는 동물의 우두머리로 그 모습은 9종의 동물들의 모습을 닮았다. 머리는 낙타,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목덜미는 뱀, 배는 큰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주먹은 호랑이를 닮았다. 또한 온몸에는 81개의 비늘이 있고, 울음소리는 마치 구리로 만든 동쟁반을 울리는 소리와 비슷하다. 입 주위에는 긴 수염이 있으며, 턱 밑에는 밝은 구슬이 있다. 목 아래에는 거꾸로 박힌 비늘인 역린이 있으며, 머리에는 박산이 있다.

그런데 앞서 질문의 내용처럼 우리나라의 대다수 비석 아래에 조각된 동물의 모습은 좀 이상한 면이 있다. 몸통은 분명 거북인데 머리가 좀 이상하다. 거북처럼 생긴 것도 있고 용처럼 생긴 것도 있기 때문이다.

3) 용의 아홉 아들 이야기

‘용생구자설’은 용의 아홉 아들들의 이야기다. 이 말이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된 것은 명나라 사람인 호승지가 지은 『진주선』이라는 글을 통해서다. 이후 ‘용생구자설’은 조선후기 우리나라 대표 실학자인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 등에도 실렸다. 그 글들은 대체로 ‘용이 아홉 아들을 두었으나 이름이 각기 달랐다’ 또는 ‘용이 아홉 아들을 두었는데 그 좋아하는 바가 각기 달랐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용왕의 첫째 아들의 이름은 ‘비희’다. 이 녀석은 무거운 것 들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거운 비석을 세울 때 그 받침돌에다 이 녀석을 새겨 넣었다. 문화재용어로 ‘귀부[거북받침]’라고 칭하는 것이 바로 비희다. 둘째의 이름은 ‘이문’이다. 이 녀석은 항상 높은 곳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와지붕 위나 비석의 머리 부분에 이 녀석을 새겨 넣었다. 문화재용어로 ‘이수[용머리]’가 바로 이문이다. 셋째의 이름은 ‘포뢰’다. 큰 소리로 울기를 좋아해 사람들은 이 녀석을 종 가까이에 두었다. 종을 천정에 매다는 고리를 ‘용뉴’라고 하는데 여기에 새겨진 멋있는 용이 포뢰다. 그런데 포뢰는 고래를 무서워해 고래를 만나면 더 큰 소리로 운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에는 종을 칠 때 나무로 만든 당목이 아닌 고래 뼈를 사용했다고도 한다. 지금도 당목 옆면에 물고기를 그려 넣는 예가 있는데 이는 당연히 고래를 의식한 것이다. 넷째의 이름은 ‘폐안’이다. 생김새는 호랑이를 닮았으며, 위엄과 정의를 상징한다하여 주로 관아나 감옥의 문 위에 새겼다. 다섯째의 이름은 ‘도철’이다. 이 녀석은 먹고 마시는 것을 즐겨 주로 그릇이나 제기에 새겨 넣었다. 여섯째의 이름은 ‘공복’이다. 물을 좋아해 항상 물가에서 물길을 따라 들어오는 잡귀를 막는 일을 즐겼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공복을 수로나 다리에다 조각했다. 일곱째의 이름은 ‘애자’다. 이 녀석은 천성이 강직하고 싸우고 죽이기를 좋아해 예로부터 칼에다 새겼다. 여덟째의 이름은 ‘산예’다. 그 모습이 사자를 닮았다. 불과 연기를 좋아한 탓에 사람들은 이 녀석을 향로나 화로에 새겼다. 아홉째의 이름은 ‘초도’다. 이 녀석은 꽉 막힌 성격에 숨기를 좋아하고, 자신의 영역에 누가 들어오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초도를 대문이나 문고리에 새겼다.

우리는 지금껏 일상 속에서 심심찮게 많은 용들을 봐왔다. 비석의 머리돌과 받침돌에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는 용을 보았지만, 그 녀석이 용왕의 첫째와 둘째 아들인 비희와 이문이었다는 사실은 몰랐다. 사찰에서는 범종의 머리 부분에 달려 있는 용모양의 고리는 보았지만 그 녀석이 포뢰였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경찰서 입구에 새겨진 무서운 동물상은 보았지만 그 녀석의 이름이 폐안이라는 것과 왜 거기에 새겨져 있는지는 역시 몰랐다. 제기에 조각된 도철, 다리나 수로의 공복, 박물관에서 만난 검에 새겨진 서슬 퍼런 모습의 애자, 향로에 새겨진 산예 그리고 대문에 조각된 초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참으로 많은 용들을 봐왔지만 그들의 정체가 무엇이며, 왜 거기에 새겨져 있는지에 대해서는 너무 무관심했던 것 같다.

4) 에필로그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할 수 있는 법이다. 이제 ‘용생구자설’을 알았으니 지금부터 문화유적탐방에서 만나는 용은 어제까지의 용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우리들의 앞에 다가올 것이다. 화석처럼 죽은 용이 아닌 살아 꿈틀거리는 생룡으로 말이다. 아참! 비석받침돌인 비희의 머리는 용머리도 있고 거북머리도 있다. 대체로 신라·고려시대는 용머리,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부터는 거북머리로 표현되었다.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