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했다’ 생명이 중요한가, 칙어(勅語)가 중요한가

대구교육박물관, 1930년대 ‘남학생 일기’ 번역본 펴내

‘남학생 일기’ 복제_대구교육박물관 교육역사관 전시


대구교육박물관(관장 김정학)은 광복절을 맞아 1930년대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등학교) 재학생 안장호 군의 일기장(원본 소장처: 대구근대역사관)을 번역해 일제강점기 대구 남학교 풍경을 담은 ‘남학생 일기’를 펴냈다.
일기의 주인공 안장호 군은 1932년에 입학해 1937년에 졸업하는데, 당시 남자 고등보통학교의 학제는 5년제로 일기장은 3학년을 제외한 1, 2, 4, 5학년의 학교생활을 기록하고 있다.
이번 번역본은 총 6권의 일기 중에서 일제강점기 당시 상황과 학교 풍경, 교육 상황 및 생활상을 잘 보여주는 내용을 발췌해 학년별로 구성했다. 일기와 더불어 책 곳곳에 일기의 시대배경이 되는 1930년대의 한국사, 대구의 상황, 교육제도 등에 대한 설명을 함께 실었고, 일기에 등장하는 관련 장소나 행사에 대한 설명은 주석으로 추가하고 당시 신문 등 각종 시각자료도 첨부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나는 생각했다. 생명이 중요한가, 칙어(勅語)나 교기(校旗)가 중요한가”
‘남학생 일기’는 2018년 대구교육박물관 개관 당시 출간한 ‘여학생 일기’와 짝을 이뤄 일제강점기 대구 기록을 풍성하게 보여준다. ‘여학생 일기’가 황국 신민화 교육에 순응했던 여학생의 모습을 보여주는 반면, ‘남학생 일기’에는 이에 대한 주인공의 비판적인 입장도 담겨 있으며, 인간의 생명보다 칙어(勅語)와 교기(校旗)를 중시하는 가르침에 대한 불쾌감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후지모토 선생님이 편찮으셔서 교련은 없고 6교시만 했다. 선생님은 편찮으신데도 우리들은 실로 기쁘고 고맙게 느꼈다. 미야하라 선생님의 시간에는 자습을 했다. 이것도 고맙다”
일기에는 입학식 풍경(당시 남자고등보통학교는 3학기로 4월 1일에 시작해 3월에 졸업했다)과 교장선생님 훈화에 대한 솔직한 반감 표현, 기존 시간표는 무시된 채 연일 계속되는 교련훈련이 너무 힘들고 지겨워 진저리를 치는 주인공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성찰해 바르고 밝고 관대한 마음을 기르도록 하라”
일기장에는 여느 일기처럼 날짜와 요일, 날씨를 기록했고 일본인 담임교사가 일기장을 검사하고 코멘트를 적어주었는데, 주로 제자에 대한 애정과 격려의 내용이었다.
이 외에도 ▲교과목, 시험, 선생님들과 수업에 관한 것 ▲소풍, 수학여행, 졸업앨범 사진촬영 등에 관한 것 ▲하모니카, 수영, 스케이트, 음악회, 영화관람 등 취미활동에 관한 것 ▲교련, 병영훈련, 군기제, 신사참배 등에 시달리는 일제강점기 교육현실에 관한 것 ▲난로 위 도시락 데우기 ▲선생님의 사정으로 수업을 못하게 되었을 때 좋아하는 학생들의 모습 ▲일본 고등학교 입학지원서류를 받는데서 조선인에 대한 차별 등 당시 대구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남학생 일기’ 번역본은 8월 중순부터 대구교육박물관 방문객에게 무료로 배부되며, 관련 내용은 교육박물관 교육학예부(☎053-231-1753)로 문의하면 된다.
<자료제공:대구교육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