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정신이 깃든 이상화 기념관·이장가 문화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이상화가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과 주권 회복의 염원을 깊은 절제로 담담하게 표현한 시이다. 이상화는 이 시를 통해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우리 겨레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었기에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감흥을 주고 있다.
대구 지하철 1호선 대곡역 2번 출구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는 위와 같은 이상화 시인의 민족 독립을 위한 정신과 의지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공간이 있다. 바로 상화 기념관·이장가 문화관이 그것이다.
2017년 12월 개관한 상화기념관은 이장가 문화관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으며 ‘이장가’는 이상화의 할아버지인 금남 이동진 선생이 재산을 가족 및 친지에게 나누어준 일을 ‘이장’이라 일컬어 붙여진 이상화 집안의 가문이름이다. 이동진 선생에게 두 아들인 이일우, 이시우 형제가 있었고, 이시우 선생의 차남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이상화 시인이다.
소담 이일우 선생은 항일운동인 국채보상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끈 인물로 우현서루를 건립해 대구 항일운동의 인재를 양성하는 데 애썼다. 동생인 이시우 선생이 이상화 시인 8세 때 일찍 세상을 등지자 이상화 시인을 포함한 네 형제를 이일우 선생이 보살폈다고 한다.
이상화 시인은 형제 중 둘째이며 맏형인 이상정 선생은 중국에서 독립군을 이끈 장군이었다. 첫째 동생 이상백은 IOC 위원을 지내며 우리나라 스포츠계의 발전을 이끈 인물이며 막내 이상오 역시 수렵가이자 저술가로 활동하면서 식민지 시대의 아픔을 글로 표현하기도 했다. 백부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란 이들 4형제는 용봉인학(龍鳳麟鶴)이라 불릴 만큼 뛰어난 사람이 되었다.
이상화 기념관·이장가 문화관에서는 이상화 시인을 비롯하여 이장가 집안에서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오랜 기간 쌓은 민족 계몽운동 및 항일 독립운동의 업적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관은 1층과 2층으로 나뉘어져있으며 우현서루 현판 및 이장가 집안 사람들이 남긴 유품들, 인물 관련 기사 등이 전시되어 있고, 특히 이상화 시인이 질녀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하나하나 뜻을 알기 쉽게 풀어 선물한 ‘24효도 병풍’을 볼 수도 있다.
※운영시간: 평일 오전 10시~오후 4시 (문의 070-7505-2786)

이원욱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