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54. 모든 재난을 소멸시키다, 소재사

1) 프롤로그

비슬산 자연휴양림 초입에 소재사(消災寺)라는 작은 사찰이 있다. ‘사라질 소’, ‘재앙 재’. 소재사라는 절 이름은 재난을 소멸시켜주는 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절에서 불공을 드리면 모든 재난이 사라진다니, 정말 솔직담백한 절집이름이다. 

2) 전각 이름에 숨겨진 비밀

전각(殿閣)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임금이나 성인과 관련이 있는 건물을 특별히 높여 부르는 말이다. 근정전[임금]·대성전[공자]·대웅전[석가모니불]·산령각[산신] 등이 해당한다. 사찰에는 다양한 종류의 전각들이 있다. 대웅전·비로전·약사전·지장전처럼 낯익은 이름의 전각이 있는가 하면, 화엄전·극락전·유리보전·원통전·용화전·명부전처럼 낯선 이름의 전각들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전각들의 이름에는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작명원칙이 있다. 바로 전각에 모셔진 주불보살이 누구냐에 따라 전각의 이름이 결정된다는 원칙이다. 예를 들어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신 전각은 대웅전·대웅보전, 미륵불을 주불로 모신 전각은 미륵전·용화전하는 식이다. 이 원칙을 알고 나면 법당 이름만으로도 그 법당에 어떤 불보살이 모셔져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3) 대웅전·명부전·삼성각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말사인 소재사는 신라시대에 처음으로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고려·조선을 거치면서 수차례 중수한 내력이 있는데 그 기록이 소재사기에 남아 있다. 지금의 대웅전은 1978년에 마지막 보수를 했으며, 명부전은 근래에 새로 중수한 건물이다. 소재사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일주문에 서서 경내를 바라보면 절집 건물들이 한 눈에 다 들어오기 때문이다. 또한 비슬산 중턱 해발 430m 지점에 있는 절집임에도 불구하고 공간배치는 산지형이 아닌 평지형에 가깝다. 일주문에서 삼성각에 이르는 경내의 땅 기울기가 거의 평지에 가깝기 때문이다. 소재사의 전각으로는 주전각인 대웅전과 부속전각인 명부전과 삼성각이 있다. 대웅전에는 정면에서 마주 보았을 때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연등불과 약사여래, 명부전에는 지장보살과 함께 시왕(十王)으로 불리는 지옥 판관인 10대왕, 삼성각에는 산신·용왕·독성이 모셔져 있다.

4) 지장보살과 시왕을 모신 전각, 명부전

불교의 여러 보살들 중에서 중생들에게 특별히 인기 있는 보살을 들라면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관세음보살은 자비의 화신, 지장보살은 지옥구제의 화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사실 지장보살은 지옥문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역할이 있다. 바로 석가모니 열반 이후, 미륵불이 올 때까지의 기간 동안 중생들을 책임져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마치 약사여래가 병고를 중심으로 중생들을 구제하듯이, 지장보살은 지옥구제를 주임무로 하되, 중생들의 모든 재난도 함께 소멸시키는 보살인 것이다.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시는 전각으로는 지장전과 명부전(冥府殿)이 있다. 여기서 명부는 저승을 뜻한다. 그래서 명부전에는 지옥구제의 보살인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그 바깥으로 10명의 저승 판관인 시왕이 모셔진다. 그 외에도 명부를 통해 망자를 확인하는 직부사자와 망자의 영혼을 인도하는 감재사자가 있다. 이 두 사자가 바로 무속에서 말하는 저승사자이다. 영화 ‘신과 함께’에서 하정우 등이 연기한 강림도령·일직차사·월직차사가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명부전 지장보살 뒤에 그려진 후불탱화 「지장시왕도」를 보면 이 외에 다른 인물들이 더 등장한다. 소머리·말머리를 한 옥졸, 색동옷을 입고 쌍상투를 튼 동자 등이다. 옥졸은 지옥에서 죄인들에게 형벌을 가하는 옥리이며, 동자는 어려서 죽어 구천을 떠돌고 있는 아이들의 영가를 묘사한 것이다. 참고로 소재사 명부전에는 정면에서 지장보살을 바라보았을 때, 우측의 여러 군상들 사이로 흰색 면류관을 쓰고 있는 한 인물이 보인다. 그분이 바로 염라대왕이다. 이처럼 시왕들 중에서 염라대왕만이 면류관을 쓰고 있는 것은 ‘왕중왕’이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5) 에필로그

종교와 무속은 기본적으로 죽음·재난·질병과 같은 인간의 원초적 두려움을 해결하는데 관심이 많다. 하지만 그 해결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종교에서는 재난의 해결방법과 동시에 이론적인 배경[교리]이 제시되지만, 무속에서는 교리 없이 재난의 해결방법만 제시된다. 또한 종교에서는 악을 목적으로 기원할 수 없지만, 무속에서는 악을 목적으로 한 기원행위도 가능하다. 소재사라는 절집 이름만 보면 솔직히 무속적인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소재사는 불법을 전하는 엄연한 불교사찰이다. 며칠 후면 음력 정월 초하루가 된다. 가정의 무탈과 안녕을 기원한다면 비슬산 소재사를 한 번 찾아보면 어떨까. 그런데 소재사에는 이상한 점이 한 가지 있다. 탑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