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7일자 모 언론에 ‘한국인의 마지막 10년을 가난하게 만드는 인생 10단계’라는 내용의 기사가 있었다. 이 기사에서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녀 교육비, 결혼시키기 등으로 정작 본인은 말년에 자기자신을 돌보지 못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전문가들은 집이나 농지가 있으면 자식에게 물려줄 생각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주택연금·농지연금을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자식과 솔직하게 “나중에 물려줄 테니 생활비, 의료비를 대겠느냐, 아니면 주택연금으로 해결하는게 좋겠느냐”고 대화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고령의 재산가가 “자식이 잘 모시겠다고 해서 미리 물려줬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서 재산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냈다는 기사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나는 개인적으로 부모는 기본적으로 아이에게 건전한 정신과 건강한 신체를 갖도록 해주고, 성장해서는 혼자 독립하는데 필요한 것들만 도와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부모는 부모의 인생이 있고 자식도 자식의 삶이 있는 것이다. 주변에서 자식에 대한 합리적 사랑이 아닌 과도한 집착으로 부모와 자식이 함께 불행해지는 경우도 많이 봤다. 부모(부부)의 인생은 신성불가침한 영역이라 생각한다. 자식에 대한 과도한 희생으로 부모의 삶이 불행해 진다면 그것은 최선의 방법이 아닐 것이다. 부모는 자식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응원해 주고 친구처럼 대화해 주며,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의논할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언제라도 부모와 함께 자연스럽게 여행을 가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비교적 성공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문제는 부모의 욕심에서부터 갈등이 시작된다. 사랑하는 내 아들, 딸들이 좋은 직업을 갖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공부를 강요한다. 이렇게 부모가 일방적으로 자식에게 강압적인 방법으로 대하는 것도 사춘기 이전까지다. 자식이 사춘기에 들어섰을 때 부모가 유년기 때처럼 부모의 생각을 강요한다면 십중팔구 더 어긋나거나 어색한 관계가 되기 십상이다. 그때서야 부모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노력해 보려고 하지만 때는 이미 늦어 버린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자식에 대한 과도한 집착보다 항상 격려해주고 자식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합리적인 사랑이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지나친 자식 사랑은 비단 우리나라 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주요 일간지의 만평에서 다룰 정도로 선진국의 부모들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2000년 프랑수아 미테랑 전(前) 프랑스 대통령의 맏아들 장크리스토프가 검찰에 구속됐다. 앙골라에 몰래 무기를 판매한 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였다. 장크리스토프는 아버지 밑에서 아프리카 담당 보좌관을 지냈다. 그는 아버지 힘을 등에 업고 아프리카 외교를 좌지우지했다. 그때 그에게 붙은 별명이 ‘파파마디(Papa m’a dit?아빠가 그러셨어)’였다. 걸핏하면 아버지 이름을 판다는 조롱이었다. 미테랑의 아내는 보석금 9억원을 마련하고 아들이 결백하다고 주장했다. “이건 보석금이 아니라 인질 석방금”이라며 검찰수사를 비난했다. 지나친 모성애(母性愛)에 눈이 가려 자식의 허물을 보지 못했다. 법원은 장크리스토프에게 집행유예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이와같이 부모의 자식사랑은 국경을 초월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내리사랑’이라는 말은 부모의 자식 사랑이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 보다 훨씬 더 크다는 의미로 쓰인다. 실제로도 부모의 자식사랑은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합리적인 수준이어야 한다. 뭐든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No! 과도한 집착, Ok! 합리적 사랑.
구용회 건양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