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길을 묻고 답하다] 자식
  • 푸른신문
  • 등록 2020-02-13 00:00:00
기사수정

언젠가 개인 사업으로 꽤 성공한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나이든 사람들의 대개가 그렇듯이 우리의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자식 얘기로 넘어갔다. 그 친구의 딸이 초등학교 때, 휴일 어느날 우연히 딸이 그린 「우리집」이란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딸은 그 그림에 엄마를 중심으로 좌·우측에 자기와 남동생만을 그렸다고 한다. 아빠 모습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친구는 딸에게 왜 아빠는 그림에 없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딸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아빠는 항상 집에 없는걸 뭐” 하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지금까지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내가 바쁜 것은 다 처자식을 위해서야”“승진만 하면, 돈만 잘 벌어다 주면 다 이해해 줄거야”“조금만 참아, 나중에 잘 해줄게”, “여유로워지면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거야”, “난 할 만큼 최선을 다했어. 용돈도 많이 주고 생일 선물도 꼬박꼬박 챙겨줬잖아”, “어린이날엔 놀이공원에 가서 함께 놀아주기도 했잖아”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달리 딸은 아빠를 단지 밖에서 돈 벌어오는 사람, 가족에게 관심 없이 일에만 미쳐있는 사람, 같이 있으면 뻘쭘해지는 사람으로 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한 초등학생이 썼다는 ‘아빠는 왜’라는 시가 공감을 일으킨 이유가 여기에 있는 모양이다.

아빠는 왜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이뻐해 주어서.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그 친구는 그 일이 있은 이후부터 인생 설계를 다시 했다고 한다. 승진도, 돈 버는 것도 좋지만 그 보다 먼저 가정을, 아이를 챙겨야겠다고 다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다짐한 것을 지금, 당장 실천하기로 했다. 나중에 하겠다고, 여유가 생기면 하겠다고 하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절감한 것이다. 삶에서 가장 파괴적인 단어가 ‘나중’이라는 것을 아는 데 너무 많은 대가를 치룬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우선 애들과 함께 하는 시간 자체를 늘리려는 노력을 했다고 한다. 평일엔 회식 횟수를 줄이고, 회식을 하더라도 2차, 3차를 자제하고 가급적 애들이 자기 전에 귀가하는 노력을 했다. 그리고 휴일에도 불가피한 일이 아니면 업무상의 출타를 삼가고 애들과 함께 시간을 가지려고 의도적으로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이다.애들과 함께 하는 시간의 양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질적인 ‘진정성’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처음에는 같이 있어주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다가 아니더라는 것이다. 건성건성하면 애들이 금방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애들에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공을 들였더니,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친밀감이 생겼다고 한다.그러고보니 이 것은 남의 일이 아닐 듯 싶다.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새겨들어야 할 바로 자신의 일일 것이리라. 이 세상에 나중은 없다. 지금 당장 실천하는 지혜가 그래서 필요하다. 

구용회 건양대학교 교수

0
푸른방송_사이드배너
영남연합포커스_사이드배너
구병원
W병원
인기글더보기
최신글더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
-
하루 동안 이 창을 다시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