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다. 이맘 때쯤이면 으레 회식이 잦아진다. 그리고 어김없이 술자리도 함께 많아진다. 본래부터 술을 좋아하는 주당들이야 신이 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술자리가 많은 연말이 고난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이에 술에 관한 얘기를 짚어보고 가는 것도 꽤 의미가 있을 듯 하다.
먼저, 술의 기원에 관한 얘기부터 들어보자. 술의 신이라고 하는 박카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박카스가 술을 만들기 위해 포도를 발효시키고 있을 때 사자가 지나가자 냉큼 잡아 사자 피를 함께 넣고, 며칠 후 술이 적당히 익어 갈 무렵, 이번에는 지나가는 원숭이를 붙잡아 그 피를 넣었으며, 술이 거의 다 익어 갈 때쯤 지나가는 개를 잡아 피를 넣었다. 그리고 술이 다 익어 꺼내 마시려 할 즈음 지나가는 돼지까지 잡아 그 피를 추가했다. 이렇게 발효된 술을 마시면 처음에는 기분이 좋아져 사자처럼 호탕해지고, 조금 더 취하면 원숭이처럼 희희낙락 온갖 요상한 짓을 하게 되며, 더 취하면 개처럼 짖어 대면서 물어뜯으려 덤벼들다가 마침내 돼지처럼 더러운 시궁창 아무데나 쓰러져 나뒹굴게 된다는 것이다.
탈무드에도 술에 관련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악마가 포도나무에 양, 사자, 원숭이, 돼지피를 거름으로 주어 수확한 포도로 술을 담갔다. 이 때문에 한 잔 술을 마시면 양과 같이 순하지만, 두 잔 술에는 사자처럼 사나워 지고, 석 잔 술에는 원숭이와 같이 시끄럽게 되며, 넉 잔 술에는 돼지처럼 지저분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가였던 벤자민 프랭클린은 “술이 죄가 아니라 만취할 정도로 마시는 사람이 죄다”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술을 마시는 유형을 굳이 구분하자면 애주가(愛酒家)형과 두주불사(斗酒不辭)형으로 나눌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옛 어른들께서는 술을 어떻게 대했는지 짚고 넘어가는 것도 꽤 흥미 있을 듯하다. 먼저, 비교되는 분이 세종과 정조 임금이시다. 세종은 ‘적중이지(適中而止)’, 즉 술을 마시되 술자리 중간에 적당히 그치는 형(型)이다. 반면에, 정조는 ‘불취무귀(不醉無歸)’, 즉 취하지 않으면 돌려보내지 않는 형(型)이었다.
사실, 세종의 ‘적중이지’는 그의 부(父)인 태종이 술에 관하여 세종을 평가한 태종실록에 나오는 말이다. 정조의 ‘불취무귀’는 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정조는 화성 축성 당시 기술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회식자리에서 ‘불취무귀’라고 하였다. 이 말은 술에 취할 정도로 마음껏 마시라는 의미도 있지만, 술에 취해 집에 돌아가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의 태평성세(太平聖歲)를 말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공자(孔子)께서는 어떠했을까? 공자의 일상생활을 기록한 것이 ‘논어(論語)’의 ‘향당편(鄕黨篇)’이다. 여기에 ‘유주무량 불급난(唯酒無量 不及亂)’이란 말이 나온다. 그런데 이를 해석하는 의견이 분분하다.
먼저 공자를 두주불사형으로 보는 의견이다. 즉 술에 양을 두지 않았으나(술 마시는 양이 한이 없었으나) 흐트러짐에 미치지 않았다.(몸 가짐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다음은 애주가형으로 보는 시각이다. 즉 술에 일정한 양 없이(미리 얼마만큼 마시겠다고 정하지는 않았지만) 정신이 어지러워지지 않을 정도로 그쳤다.(몸 가짐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한계를 두었다.)
그나저나 오늘 저녁 술자리에서는 좀 고상한 건배사를 해봐도 괜찮을 듯 싶다. 세종 임금님을 본받아서 ‘적중(適中)’,이라는 선창에 ‘이지(而止)’라고 화답해 보자. 아마 풍류가 넘치는 멋진 자리가 되지 않을까.
구용회 건양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