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갈수록 대화의 주제가 자식 얘기로 가는 경향이 있다. 필자도 예외는 아니어서 자식 얘기 좀 하고자 한다. 팔불출의 하나인 자식 자랑을 하고자 함은 결코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아들이 있다.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27년 후배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장교로 복무 중에 있으니 대견하다.
나는 평소에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건전한 정신’과 ‘건강한 신체’라는 생각을 해왔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곳이 사관학교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렇다고 아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었다. 나와 아내는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자고 했다. 아들도 고민을 많이 하는 듯 했다. 결국 아들은 육사를 선택했다. 소위 일류대학으로 불리는 대학은 공부만 잘하면 갈 수 있다. 그러나 육사는 그렇지 않다. 공부는 물론이고 국가관, 인성, 체력이 함께 요구된다. 아들은 그런 어려운 과정에 합격했다.
매년 육사에 합격하는 인원 중에 직업 군인의 자녀가 차지하는 비율은 5% 미만이다. 특히 모교 출신의 아빠와 선·후배가 되는 경우는 그보다 훨씬 적다. 자녀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직업군인이 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아버지 입장에서 자신이 평생 몸담았던 군인의 길이 보람 있고 자랑스럽기 때문에 자기 자녀에게 권할 수 있을 것이다. 자녀의 경우에도 인생을 아버지처럼 사는 것이 괜찮다고 느꼈기 때문에 선택했을 것이다. 어쨌든 어떤 경우에도 자녀가 가업을 잇는다는 것은 꽤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나는 아들이 육사에 합격한 것이 무척 가슴 뿌듯하였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더 나를 감동시킨 일이 일어났다. 육사에 합격하면, 1월 말 경에 가입교하여 민간인에서 사관생도를 만드는 과정인 ‘기초군사훈련’을 받는다. 이 훈련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그 훈련을 담당하고 있는 훈육장교를 통해 아들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훈련 프로그램 중 가입교 생도들에게 육사를 지원한 동기를 묻고 토의하는 시간이 있다. 아들은 지원 동기를 묻는 질문에, “20여년 간 아빠가 군생활 하시는 모습을 보고, 아빠를 존경했기 때문에 육사를 선택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나는 가슴이 벅차 올랐다. 아빠가 보기엔 마냥 어린 줄만 알았는데 그런 대견스런 생각을 하다니! 난 그날 감동 먹었다.
지금 아들은 벌써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영관 장교가 되어 예비역이 된 아버지의 몫까지 나라에 충성하고 있다. 그 아들을 바라보면서 그 옛날 나의 군생활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본다.
구용회 건양사이버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