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묻고 답하다] 충성

우리는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성이라고 하면 매우 거창고 특별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크고 별난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자기자신, 가족, 함께 일하는 부하, 동료, 상관에 대한 충성(사랑)을 잘 실천하면 자연스럽게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성으로 귀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1947년 폴란드가 공산화되자 노인 한명이 자유를 찾아 외국으로 망명을 하여 그 나라 어느 항구에서 등대지기 노릇을 한다. 그런데 노인은 외국어를 한마디도 못했기 때문에 항상 외롭게 지냈지만 타고난 성실함으로 10년이 넘도록 등대의 불을 꺼뜨려 본 일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적십자사에서 노인에게 고국 폴란드에서 발행된 신문이랑 시집 같은 것을 한 묶음 보내 주었다. 노인은 너무나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모국어로 된 책들을 읽고 또 읽는다. 그날 밤 10년 만에 처음으로 등대에는 불이 켜지지 않는다. 날이 새고 주민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등대로 몰려왔을 때 노인은 이미 숨을 거둔 다음이었다. 노인은 모국어를 대하는 감격과 조국에 대한 향수 때문에 그만 심장이 멎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 내용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폴란드 작가 센키비치(Henryk Sienkiewicz, 1846~1916)의 단편소설 ‘등대지기’의 줄거리다.아무리 영리한 원숭이라도 200개 가량의 단어를 기억은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조합하여 단 한마디의 말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언어는 인간만이 보유하고 있는 특별한 능력이다. 모국어는 거기서 또 그 민족의 역사와 전통, 기질, 그리고 특별한 관습이 숨을 쉬고 있다. 우리 한글의 “엄마” 또는 “어머니”란 단어는 우리 민족의 혼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부호인 셈이다. 일제 강점기때 일본이 한국말을 쓰지 못하게 하고 일본어를 가르친 것도 바로 혼을 없애기 위한 악랄한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2002년 월드컵 때 온 국민이 함께 대한민국을 외친 것도 애국심의 발로이다. 우리 선수들에 대해 눈물 흘리며 열광했던 것도 내 조국, 내 나라, 내 민족이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모든 나라 국민들이 자국의 승리를 응원하는데 만약 응원할 나라가 없다고 한다면 얼마나 서럽겠는가.동물의 세계에서만 약육강식의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국가 간에도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고, 약한 나라는 망하기도 한다. 우리도 과거 일제에 의해 주권을 빼앗기고 그에 따라 대한제국의 군인들이 해체된 적이 있었다.이스라엘은 기원전 1,300년경 모세가 이끄는 히브리 족이 이스라엘 왕국을 설립했으나, 기원전 77년에 로마의 박해로 세계 각지로 흩어진 후 1948년 5월 14일 2,000년 만에 나라를 세운 만큼 생존하기 위해 눈물겹게 나라의 힘을 키워가고 있다.이렇듯 국가와 국민이 없이는 자기자신, 가족, 부모, 부하, 동료, 상관도 있을 수 없다. 결국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성은 자기자신, 가족, 부모, 부하, 동료, 상사에 대해 충성(사랑)을 잘 실천하면 자연스럽게 귀결되는 결과인 것이다.

구용회 건양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