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묻고 답하다] 자유롭게, 그러나 즐겁게

19세기말, 아름다운 가곡을 남긴 작곡가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만과 유명한 독일의 피아니스트였던 그의 아내 클라라 슈만, 그리고 슈만의 제자가 되어 스승 아내 클라라를 사랑한 낭만주의 거장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 이 세사람의 음악가들의 러브스토리는 영화로 제작되는 등 100년을 뛰어넘은 현재에도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인연은 브람스가 슈만의 제자가 되기 위해 추천장을 가지고 그의 집을 찾아가면서부터 시작된다. 브람스의 피아노 연주와 그의 작품을 들어본 슈만 부부는 브람스의 음악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브람스의 천재성을 단번에 알아본 슈만은 극찬을 하였으며 얼마간 자신의 집에 머무르도록 했다. 브람스는 스승의 아내 클라라를 사랑하기 시작했고 유학을 떠난 뒤에도 연정의 편지를 계속 보낸다. 그러나 몸이 아픈 슈만을 간호해야 했던 클라라는 브람스의 마음을 완곡하게 거절한다. 이후, 슈만의 죽음으로 브람스와 클라라 사이의 모든 장벽이 사라졌지만, 브람스의 클라라에 대한 사랑은 현실이 없는 환상으로만 남을 수 밖에 없었다. 1896년, 클라라가 세상을 떠났을 때 브람스는 “삶의 가장 아름다운 경험이었고 가장 위대했던 가치였으며 가장 고귀한 의미를 잃어버렸다”고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도 클라라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 클라라의 뒤를 따라갔다.
브람스는 만년에 70세가 넘은 클라라에게 이런 말을 했다. “당신과 당신의 남편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험을, 그리고 가장 값진 보물과 가장 고귀한 순간들을 주셨습니다.” 1896년 5월 20일 클라라가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브람스는 ‘내가 평생 사랑했던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슈만의 충실한 아내이자 여섯 아이들의 엄마,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능이 풍부한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 1853년 2월, 슈만이 라인강에 투신했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간 브람스는 깊은 상처를 받은 클라라를 도와 절망에서 그녀를 구하는 일에 혼신을 기울이게 된다. 클라라를 잠시라도 곤경에서 구하고 싶고 생기를 찾아주기를 바라는 것이 브람스가 바라는 모든 것이었다. 그리고 이 무렵부터 브람스와 클라라 사이에 편지의 교환이 시작된다. 그후 40년 에 걸친 음악사상 보기 드문 우정의 편지가 오고간다. 이 편지들에서 드러나는 것은 ‘현실세계 속에서 클라라를 연모하는 브람스’와 ‘현실도피의 차원에서 브람스를 생각하는 클라라’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20세에서 64세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태반을 지내는 동안 브람스의 마음을 차지했던 것은 오직 클라라의 존재였다.
이처럼 브람스는 그의 삶의 모토 “자유롭게, 그러나 즐겁게”처럼 평생 혼자 살면서 슈만이 죽은 후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클라라를 지원해주고 보살펴 주었다. 스승의 아내를 향한 고결한 사랑이었다.

구용회 건양사이버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