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157. 남지장사, 좌 청련암 우 백련암

1) 프롤로그
하늘을 나는 새도 양쪽 날개가 온전해야 잘 날 수 있고, 다리 달린 짐승도 양 다리가 멀쩡해야 잘 뛸 수 있다. 세상 모든 생물체는 웬만하면 모양이 좌우대칭이다. 아마도 조물주가 삼라만상을 창조할 때, 좌우대칭을 최선이라 판단했던 것 같다. 가창면 우록리 백록동에는 천년고찰 남지장사가 있다. 팔공산 자락 북지장사와 서로 상대가 된다하여 남지장사란 이름을 얻었다. 남지장사를 가운데 두고 좌우대칭 되는 지점에 부속암자 두 개가 있다. 청련암과 백련암이다. 이번에는 이 두 암자에 대한 이야기다.

2) 좌청룡·우백호·남주작·북현무
사신(四神) 혹은 사신사(四神砂)라는 말이 있다. 중국 고대 사상에서 방위를 나타내거나 혹은 방위를 수호하는 신령스런 동물을 말한다. 동쪽은 용, 서쪽은 호랑이, 남쪽은 봉황, 북쪽은 거북이다. 여기에 동은 청색, 서는 백색, 남은 붉은 색, 북은 검은 색이란 오방색이 더해져 청룡·백호·주작·현무라는 사신이 탄생했다. 풍수지리에서는 특별히 ‘사신사’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아주 먼 옛날 종이와 붓이 귀하던 시절에는 풍수지리를 공부할 때 모래를 사용했다. 동서남북에 자리한 산을 모래로 표시한 것. 여기에 유래해 ‘모래 사’를 써서 사신사라 한 것이다. 사신에는 동양 대표 사상인 ‘오행론’이 담겨 있다.

봄을 상징하는 동쪽은 태양이 떠오르는 곳이요, 생명이 막 시작되는 방위다[木]. 그래서 봄에 피어나는 새싹처럼 일자형 한 방향으로 힘차게 뻗는 청룡을 취했다. 여름을 상징하는 남쪽은 일 년 중 생명력이 가장 왕성한 방위다.[火] 그래서 불타오르는 불새처럼 힘차게 날갯짓 하며 날아오르는 붉은 봉황 주작을 취했다. 가을을 상징하는 서쪽은 왕성한 생명력을 정지시키고 거둬들이는 방위다.[金] 포효하는 백호를 취한 것은 이제 더 이상 까불지(?) 말고 죽음을 대비하라는 뜻이다. 겨울을 상징하는 북쪽은 다음 생을 위해 생명력을 안으로 응축하고 보존하는 방위다.[水] 그래서 겉껍질이 단단한 검은 거북 현무를 취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주작과 현무는 남주작, 북현무인데 청룡과 백호는 동청룡, 서백호가 아닌 좌청룡, 우백호다. 동양에서는 고대로부터 방위를 논할 때 앞뒤는 남북으로, 동서는 좌우로 표현했다. 왕은 항상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보고 앉는다는 ‘군왕남면설’에 근거한 것이다. 그래서 옛 문헌에 등장하는 ‘좌우’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임금을 바라보는 백성’ 입장이 아닌 ‘백성을 바라보는 임금’ 입장이다.
참고로 고대 동양에서는 나라를 세우면 제일 먼저 도성 왼쪽[동쪽]에 종묘, 오른쪽[서쪽]에 사직단을 세웠다. 이를 ‘좌묘우사’라 한다. 이 역시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왕을 기준으로 한 표현이다.

乙자형을 하고 있는 청련암 인법당

3) 좌청룡 청련암(靑蓮庵)
남지장사 부속암자인 청련암은 남지장사 동쪽 산 중턱에 있다. 남지장사를 등지고 왼쪽이다. 정확한 창건연도는 알 수 없지만 창건유래설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인 684년(신문왕 4) 낭개조사가 남지장사를 창건할 때 함께 건립됐다고 한다. 여말선초 고승인 무학대사가 한때 머물렀고,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가 거처하며 승병훈련장으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청련암은 임란 때 왜적에 의해 소실됐다. 이후 1680년(숙종 6) 중건, 1806년(순조 6) 화재로 소실, 1808년(순조 8) 재건, 1970년대 중수 등 여러 번 중건과 보수가 있었다.
청련암 주요 건물로는 인법당·삼성각·대문채가 있다. 특히 법당이자 요사이자 부엌이기도 한 인법당(因法堂)은 건물 모양이 좀 독특하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가운데 ‘一’ 형 몸체를 두고 왼쪽에는 앞으로, 오른쪽에는 뒤로 돌출된 건물이 덧붙여져 있어 하늘에서 보면 ‘乙’ 자 형이다. 인법당은 이런 특이한 형태와 옛 건축양식이 남아 있어 대구유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인법당에는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그럼에도 법당 이름을 아미타불을 모시는 미타전·극락전·무량수전 등으로 하지 않고 일반 당호를 붙여 인법당이라 했다. 이는 인법당이 화려한 장엄미를 특징으로 하는 일반 사찰과는 달리, 단청 없이 소박한 민가 양식을 취한 뜻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백련암. 관음전과 요사 사이로 산신각이 보인다

4) 우백호 백련암(白蓮庵)
남지장사 부속암자인 백련암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내용이 없다. ‘디지털달성문화대전’에는 “백련암은 과거 남지장사 우측 산록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1950년 경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고 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남지장사를 마주 보았을 때 왼쪽에 자리한 백련암은 오른쪽에 위치한 청련암과 서로 대칭관계에 있다. 백련암은 방위로 보면 서쪽에 있어 서방색인 ‘백’을, 청련암은 동쪽에 있어 동방색 ‘청’을 사용한 것 같다. 또한 풍수지리에서는 명당을 중심으로 좌청룡은 남자후손, 우백호는 여자후손을 상징한다고 본다. 그래서일까. 신기하게도 우백호에 해당하는 백련암은 현재 비구니 암자다. 백련암 주요건물은 관음전, 산신각, 요사 2동이다.
필자는 여행기나 관광지 설명문을 읽을 때마다 자주 겪는 스트레스가 있다. ‘좌·우’ 개념 때문이다. 위 “백련암은 과거 남지장사 우측 산록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란 표현을 예로 들어보자. 이 문장은 두 가지로 이해가 가능하다. ‘바라봄을 당하는 남지장사 기준’과 ‘바라보는 사람 기준’이다. 이때 전통문화에 익숙한 이는 대체로 전자로 인식하고, 일반인은 후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필자는 글을 쓸 때 ‘좌·우’라는 표현 앞에 반드시 “~을 마주 보았을 때”라는 문구를 집어넣는다. 참고로 한 가지 방법이 더 있다. ‘예절방위’다. 이는 전통예절을 공부하는 이들 사이에서 통하는 개념이다. 방위에는 나침반에 근거한 ‘절대방위’와 상황에 따라 바뀌는 ‘예절방위’가 있다. 예절방위는 나침반 방위와 상관없이 내가 바라보는 대상이 있는 쪽을 무조건 북쪽으로 보는 방법이다. 예절방위에 익숙한 사람은 좌우보다는 동서란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동서로 표현하면 좌우에 대한 혼란이 없기 때문이다.

5) 프롤로그
모든 향교·서원이 그러하듯 도동서원도 강당을 마주 보고 섰을 때 오른쪽에 동재, 왼쪽에 서재가 있다. 그런데 도동서원은 북향집이어서 나침반 방위로 보면 동재가 서쪽, 서재가 동쪽에 있다. 그런데도 서쪽에 있는 집을 동재, 동쪽에 있는 집을 서재라 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예절방위를 적용한 탓이다. 한편 제사상차림에 ‘우반좌갱’이란 말이 있다. 이는 ‘신의 입장’에서 오른쪽에 밥, 왼쪽에 국을 놓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제사상차림에 있어 아주 예외적으로 신이 아닌 사람을 기준으로 하는 표현이 있다. ‘좌포우혜[해]’다. 사람을 기준으로 왼쪽에 포, 오른쪽에 식혜를 둔다는 뜻이다. 이는 옛 예서에는 나타나지 않는 표현으로 근대에 와서 만들어진 말이다. 우암 송시열은 ‘포서해동’[포는 서쪽 해는 동쪽]이란 표현을 썼다.

송 은 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