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묻고 답하다] 정승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

천주교의 성직자들이 지금도 수도원 같은 데서 자급자족의 농사를 지으며 어렵게 살고 있는 것은 돈의 유혹을 뿌리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불교에서 스님들이 맨발로 고행의 산길을 걷는 것도 마찬가지다. 유교에서는 큰집이 천칸이 있어도 밤에 잘 때는 여덟자 밖에 차지하지 못하고, 좋은 밭이 만경(300만 정보)이 있어도 하루에 두끼 밖에 더 먹느냐고 가르치고 있는 것도 같은 철학에서 연유한 것이다.
요컨대 바람직한 사람은 돈보다 귀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는 “돈이면 다다”라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 했으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돈을 어떻게 벌었느냐 하는 것이다.

근검ㆍ절약해서 벌었느냐?
새로운 발명으로 벌었느냐?
좋은 상품을 값싸게 만들어서 벌었느냐?
개척과 모험으로 벌었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는 말은 적절치 않다. “정승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근검이라는 말은 근면과 검소의 뜻을 포함하는 용어이다.
근면과 검소는 서로 독립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우리들은 그것을 하나의 단어처럼 사용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근면한 사람은 반드시 검소한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근면이란 무슨 뜻인가? 예부터 이르기를 부지런하다는 것을 가리켜 근면이라 일컬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그 뜻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용어에 대한 개념이 뚜렷해야만 실천이 가능하고 생활화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옛말에 이르기를 근위무가지보(勤爲無價之寶)라고 하였다. 이는 근면이야말로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라는 뜻이다. 같은 맥락의 의미로서 보배는 녹슬지 아니하고 썩지도 않는다 하여 근자불부(勤者不腐)라는 용어를 곁들여서 쓰는 경우가 많다. 이는 부지런히 살아가는 사람은 부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무리 좋은 약수라 해도 그릇에 담아 놓으면 맛이 변해가고, 지극히 맑고 깨끗하던 물도 웅덩이에 괴여 있게 되면 썩기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재주와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 하더라도 스스로를 나태 속에 묻어두게 되면 그 재주와 능력은 녹슬 듯이 쇠퇴하기 시작하여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견디기 어렵게 된다. 이는 곧 자기선용을 하지 못했다는 데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구용회 건양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