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묻고 답하다] 글로벌 근검과 근면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의 근검과 근면에 못지 않게 세계적인 부호와 경영자는 그 이유야 어떻든 인색하기로도 유명한 경우가 많다.
폴 게티(Jean Paul Getty, 1892∼1976)는 한 때 미국에서도 개인 재산이 제일 많은 부호가였다. 그는 호화판 대저택을 갖고 있었는데, 그 규모가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였다. 침실이 34개, 응접실이 7개, 목욕탕이 14개에 뒤뜰에는 테니스 코트가 5개, 골프코스, 풀장 등이 갖추어져 있었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저택구조까지 설명하는 것은 실로 믿어지지 않는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기 위해서다.
이 저택의 복도 구석 구석엔 무슨 상자가 하나씩 놓여 있었는데, 그것은 전화가 있는 자리마다 그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동전을 넣는 상자. 폴 게티는 전화를 거는 사람에게 반드시 요금을 물게 한 것이다.
혹시 잔돈이 없는 사람이 있을 것에 대비해서 고용원들에겐 언제나 동전을 호주머니에 넣고 있도록 명령했다.
2백만 달러짜리 저택에 살고 있는 폴 게티를 생각하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일들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런던에서 개 품평회가 있었다. 오후에는 입장객이 적어 주최측은 오후 5시 이후엔 입장료를 반액으로 할인했다.
우연히 이 품평회에 구경을 갔던 폴 게티는 입구에서 그런 광고문을 보고 12분을 기다렸다가 들어갔다. 그가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 48분이었다.
그의 어린 시절에는 학교에서 점심값을 아껴 저축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쓴 그의 일기도 있다.
“맑음, 오늘은 아버지에게 매달려 25센트를 받았음. 비가 옴, 오늘은 엄마한테 졸라 10센트를 받아냄. 역시 엄마는 구두쇠야”
폴 게티가 혼자서 자수성가해 작은 기업을 일으켜 일약 세계적인 부호가 된 것은 결코 행운도 우연도 아니었다.
독일의 대재벌인 알프레드 크루프(Alfred Krupp, 1812∼1887)의 생활도 대단히 소박했다. 그는 아침 식사를 삶은 달걀 하나와 빵 한 조각으로 대신했다. 그의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엄격한 가풍에 따라 말없고 검소한 인간이 되도록 가르쳤다. 그는 방이 2백개나 되는 별장을 내버려 두고 작은 집에서 살았다. 돈이 드는 일은 도대체 싫어한 것이다.
미국의 팬 아메리칸은행 대표이사를 지낸 제임스 소틸이란 사람은 외출을 할 때면 용돈을 한푼도 넣지 않고 나갔다. 돈을 가지고 있으면 많든 적든 꼭 쓰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는 영 옹색할 때면 친구에게 1달러 혹은 2달러를 빌려서 썼다. 물론, 나중에 갚기는 했지만 돈을 헛되이 쓰지 말자는 그 고집만은 대단한 사람이다.

구용회 건양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