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138. 당상천황·마당천황·보안천황, 논공 천왕당

1) 프롤로그
며칠 전 한 독자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자신의 마을에 있는 ‘논공 천왕당’을 지면에 소개해 달라는 것. 필자는 작년 이 맘 때쯤 본 지면을 통해 우리 지역에 산재한 서낭당과 마을동제에 대해 3회에 걸쳐 연재한 바가 있다. 해당 연재에서 현재까지 동제가 행해지고 있는 서낭당을 소개하면서 논공 천왕당을 잠깐 언급한 바가 있다. 필자의 글을 열심히 챙겨보고 있다는 애독자의 요청인 만큼 이번에는 ‘논공 천왕당’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논공 천왕당은 논공읍 남리와 북리 사이 야산자락에 있으며, 대구광역시 민속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마을신이 머무는 공간, 서낭당겮뵌껜?천왕당
옛날에는 마을마다 마을신을 모시는 특별한 공간이 있었다. 전통적으로 우리네 마을신은 못하는 것이 없었다. 마을의 평화와 풍요는 물론 풍년과 풍어, 자연재해와 질병 예방, 득남(得男)·소원성취 등 못하는 것 빼고는 다하는 그야말로 전지전능한 신이었다. 물론 천신·지신·해신(海神) 같은 최상급의 신들도 있었지만 평범한 백성들에게 있어서 이들은 너무 먼 곳에 있는 신이었다. 백성들은 급이 좀 낮더라도 자신들과 한 동네에 같이 살고 있는 마을신을 더 믿고 의지했다.
마을신이 머무르고 있는 공간을 지칭하는 용어는 다양하다. ‘성황당·선왕당·천왕당·당산·당집·당목·할매당·할배당·조산(무더기)·돌탑·천왕매기·골매기·수구막이·국수당·국시당·진또배기·돌무덤·말무덤 등등…’ 우리가 살고 있는 경상도에서는 주로 서낭당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서낭당은 마을입구·길가·고갯마루·산기슭 등에 있는데 그 위치에 따라 서낭당 형태나 신의 종류가 달라진다.
서낭당 형태는 크게 ‘돌무더기형’·‘신목(神木)형’·‘돌무더기+신목형’·‘당집형’으로 분류된다. 마을입구·고갯마루·길가처럼 사람의 통행이 많은 곳은 돌무더기형·신목형·돌무더기+신목형 서낭당이 많다. 이곳에서는 주로 길손의 안전을 기원하거나, 주민 개개인의 소원을 기원한다. 이에 비해 마을 깊숙한 곳이나 산중에는 당집형 서낭당이 많다. 당집형 서낭당은 동제처럼 마을공동체 단위의 기원이 주로 행해진다.
서낭당의 위치에 따라 마을신의 종류도 달라진다. 서낭당은 대체로 산중에 있는 상당, 마을 중심에 있는 중당, 마을입구에 있는 하당으로 나눠진다. 이 중 상당은 최고 등급의 마을수호신인 ‘산신’을 모시는 곳이고, 중당은 ‘동신(洞神)’을, 하당은 ‘골매기신’을 모신다. 골매기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마을에 처음 터를 잡은 인물을 신격화한 마을 개척신이란 설이고, 다른 하나는 골짜기로 들고나는 길운과 액운을 다스리는 신이란 설이다.

고사목과 돌담에 둘러싸인 논공 천왕당
논공 천왕당 감실에 봉인된 위패


3) 최상급 마을신 당상천황
마을에 따라서는 서낭당이 상당·중당·하당으로 나눠지지 않고 한 곳에만 있는 곳도 많이 있다. 과거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지금을 기준으로 하면 논공 천왕당도 여기에 해당한다.
논공 천왕당에는 모두 3위의 마을신을 모시고 있는데 신들의 위패에는 각각 ‘당상천황(堂上天皇)·마당천황(馬堂天皇)·보안천황(保安天皇)’이라 새겨져 있다. ‘성황신·산신·천신’하는 보통의 서낭신 이름에 비해 낯설고 어려운 이름들이다. 생각건대 당상천황은 마을의 모든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최상급 마을신을 지칭하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상당에 모셔진 산신이나 천신 정도쯤 될 것 같다.

4) 마신(馬神), 마당천황
마당천황은 그 이름만큼이나 정체가 묘하다. 추측건대 두 가지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하나는 고려·조선시대에 행한 ‘마조·마사·마보·선목’ 같은 성격의 제사일 가능성. 다른 하나는 서낭신의 탈 것으로써의 말, 혹은 호환(虎患)을 물리치는 말을 신격화한 것일 수 있다.
먼저 ‘마조·마사·마보·선목’이라는 측면을 살펴보자. 고려·조선시대 국가에서 인정한 제사인 국사(國祀)는 크게 대사·중사·소사·기고·속제·주현제 등으로 분류된다. 이 중 말에 대한 제사인 ‘마조·마사·마보·선목’은 소사에 해당했다.
마조제는 말의 조상, 마사제는 마굿간 토신, 마보제는 말에게 해를 끼치는 신, 선목제는 말을 키우는 방법을 처음 가르쳐준 시조에 대한 제사다. 전통시대에 말은 전투력의 시작이자 끝이라 할 만큼 중요했고, 일상생활에서도 이동과 운송수단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가축 중 하나였다.
다음으로 서낭신의 탈 것, 호환을 물리치는 말이라는 측면을 보자. 강원도 지역 서낭당에는 유독 철로 만든 작은 말조각상이 많이 모셔져 있다. 손가락 크기 정도의 작은 철마인데 그 유래가 무척 흥미롭다. 철마 유래설을 요약해보면 이렇다.

철마는 신의 탈 것 혹은 사자(使者)의 의미인 것 같다. 박혁거세의 백마, 동명왕의 기린마, 천마총의 천마처럼 고대로부터 말은 신의 탈 것, 사자로 인식되어왔다. 그런데 서낭당에 모셔진 철마의 경우 다리가 하나 없는 예가 많다. 이에 대해서는 호랑이를 쫓기 위해 말이 뒷발질을 하다 뒷다리 하나가 부러져서 그렇다는 설이 있다. 한편 이와는 전혀 다른 설도 있다. 서낭당에 모셔진 동물상이 말이 아닌 12지신 동물상이라는 설이다. 12지신 동물상이 서낭당에 모셔진 것은 열 두 띠와 관련 있는 12지신이 마을주민들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5) 골매기신, 보안천황
보안천황은 말 그대로 마을을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신으로 마을 입구 하당에 머무는 골매기신과 비슷한 것 같다. 참고로 논공 천왕당에 걸려 있는 「산제당이건기」에 ‘산기슭에 민가 200-300호가 있고, 마을과 산의 형국이 말안장[마안·馬鞍]을 걸어둔 것 같다하여 안인동(安仁洞)이라 이름했다’는 대목이 있다. 보안천황은 안인동[安]을 보호[保]하는 마을신이 되는 셈이다.

6) 에필로그
우리 고장을 넘어 대구광역시 안에서 가장 폼(?) 나는 서낭당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논공 천왕당이 첫손가락에 꼽힐 것이다. 지금의 천왕당은 본래 인근에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인 1924년 현 위치로 이건한 것이다. 2009년 동네 아이들의 실화로 서낭당을 둘러싼 노송 중 일부가 고사하는 일이 있었지만, 지금도 노송과 돌담에 둘러싸인 논공 천왕당은 묘하고 신령한 기운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산제당이건기」에 의하면 이곳은 서낭당이 들어서기 전부터 신령스런 기운이 감도는 터였음을 알 수 있다.
‘산정상부 약간의 평지에 기이한 돌과 노송이 열 지어 둘러싼 음지가 있었는데 언제부터 있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지금도 천왕당 감실 앞에는 소원을 기원하며 사람들이 올린 동전·음료수·과자·사탕 등이 자주 눈에 띈다.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