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관이란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의 관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생관은 장구한 역사를 통해 형성되었기 때문에 어느 한 시기나 관점에서만 말하기 어렵다. 고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찍이 순장(旬葬)의 풍습이 있어 죽은 자를 산 자와 더불어 동일하게 취급하며, 죽은 자의 시체를 매우 중하게 여긴 흔적을 많이 볼 수 있다. 이것으로 볼 때 고대 우리나라의 샤머니즘에서 저승에 대한 관념이 얼마만큼 뚜렷한 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사후에도 이 세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믿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생관은 종교에 따라 많은 차이를 두고 있으나 공통적인 것은 사후 세계가 있어 착한 일을 하면 천당 또는 극락에 가고, 악한 일을 하면 지옥에 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번 태어난 인생을 어떻게 보람있게 살다 가야하는가를 한번쯤 고민해 보게 된다.
조선시대 기해사옥(己亥邪獄)때 순교한 김대건 신부는 열 다섯의 나이에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가서 신앙공부를 하였다. 그리고 1843년 신부가 되었는데 당시 조선에서는 천주교 신자는 모조리 처형하고 있어서 귀국결정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김대건 신부는 귀국을 결정했고 선교활동을 펴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내 잡히고 만다. 그는 “사람이 한번 나면 죽기 마련인데, 천주를 위해 죽는 것이 도리어 나의 소원이니 오늘 묻고 내일 물어도, 때리고 죽여도 나의 말은 같을 뿐이다. 죽일테면 빨리 죽여달라.”라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아 들였다고 한다. 그는 그가 믿는 종교를 위해 목숨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는 사생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안중근 장군도 같은 사례일 것이다. 그 또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서슬 퍼렇던 일본군 헌병들 앞에서도 당당한 자세로 자신의 행동이 옳았음을 설명하였다. 후일 일본군 헌병중에서 안중근 장군을 존경하는 사람이 생길 정도였다고 한다. 결국 안중근 장군도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는 것이 더욱 보람있는 삶이라 생각하고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 들였던 것이다. 오늘 올바른 사생관에 대해 깊이 사색하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꽤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구용회 건양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