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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116. 용화사·관음사, 이산가족 용머리기단
  • 푸른신문
  • 등록 2020-05-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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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지난주까지 2회에 걸쳐 쌍계리 치마거랑마을 유적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래도 못다 한 이야기가 있다. 쌍계리 동부마을 남쪽 구천가에 있다가 최근 인근 봉리로 옮겨 중창한 용화사에 대한 이야기다. 용화사 대웅전에는 3구의 석불과 함께 아주 특별한 유물이 한 점 있다. 대웅전 정면 계단 소맷돌 옆에 있는 용머리기단이다. 중창 이전부터 용화사에 전해져 내려오던 용머리인데 자세히 보면 좌·우 두 개의 용머리가 한 쌍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하나는 옛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새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짝을 잃고 이산가족이 된 용화사와 관음사 용머리기단에 대해 알아보자. 

2) 킹코브라와 아홉 동물을 닮은 용

용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닌 동물로 묘사된다. 다만 동양에서는 긍정적 이미지가, 서양에서는 부정

적 이미지가 좀 더 강하다는 차이가 있다. 동양의 용은 크게 ‘인도 용’과 ‘중국 용’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인도 용은 그 유래가 킹코브라에 있다. 인도에서는 사자·코끼리보다 사람에게 더 위협적인 동물이 맹독을 지닌 킹코브라다. 킹코브라는 사자·코끼리와는 달리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살기에 인도인들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두려운 존재다. 그래서 인도에는 예로부터 킹코브라를 숭배하는 토템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킹코브라는 초자연적 능력을 지닌 용이란 존재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인도에서는 킹코브라를 ‘나가’라고 하는데, 이를 중국식으로 번역한 것이 용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중국 용은 인도의 킹코브라처럼 특정 동물에 기원했다기보다는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를테면 용의 모습을 두고 머리는 낙타,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목덜미는 뱀, 배는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주먹은 호랑이 등 모두 9종 동물의 특징을 닮았다거나, 비늘의 개수가 81개요, 울음소리는 동쟁반을 울리는 소리요, 긴수염과 구슬을 지녔으며, 목 아래에 거꾸로 박힌 비늘인 역린이 있다거나 하는 식이다. 한편 동양 용은 또 다른 측면에서 구분해 볼 수도 있다. 민간에서는 구름과 비를 다스리는 물의 신, 불교에서는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 도교에서는 신성한 자연신, 유교에서는 황제나 성인을 상징하는 신령한 동물 하는 식이다. 필자는 용을 이해할 때 항상 명나라 사람 호승지가 쓴 ≪진주선≫에 나오는 ‘용생구자설’로 접근한다. 우리나라에서 만나게 되는 용은 이 ‘용생구자설’의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용생구자설에 대해서는 본 지면에서 이미 다룬 적이 있다. ‘85. 용생구자설을 아시나요?(2019.9.26.)’]         3) 용화사 석불과 용머리기단달성군 유가읍 봉리 테크노폴리스 아파트단지에 위치한 용화사는 과거 인근 쌍계리 동부마을 구천가에 있었던 쌍계사에 기원을 두고 있다. 1940년 경 박송파라는 인물이 논을 갈다가 돌로 만든 석불 3구를 발견해 그 자리에 절을 지었는데 이 절이 쌍계사다. 이후 어느 때인가 큰 홍수를 만나 쌍계사는 폐사가 되고, 미륵당이라는 임시 가건물을 지어 쌍계사를 대신했다. 1979년 주지 장윤선 스님이 가건물을 헐고 용화사를 창건, 2014년 테크노폴리스조성 사업 때 지금의 자리로 옮겨 중창한 것이 지금의 용화사다. 용화사에는 두 가지 볼거리가 있다. 하나는 논을 갈다가 발견했다는 대웅전에 모셔진 3구의 석불이다. 가운데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자리하고 있다. 통상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하고 좌우협시보살로 문수보살·보현보살이 자리하지만 용화사 대웅전처럼 예외인 경우도 많이 있다. 용화사라는 절 이름도 알고 보면 석가모니불이 아닌 미륵불과 연결되는 절 이름이다. 과거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 석가모니처럼 미래에 용화수 아래에서 부처가 될 이가 미륵보살이다. 그래서 미륵불을 모신 법당을 미륵전 또는 용화전이라고 하는 것이다. 용화사 이전 가건물시절에 법당 이름을 미륵당이라 한 것도 다 같은 맥락이다. 용화사의 또 다른 볼거리는 대웅전 정면 계단 좌우측 소맷돌 옆에 놓인 두 개의 용머리다.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좌측은 옛것이요, 우측은 새것이다. 본래는 한 쌍이었는데 과거 어느 해 홍수 때 범람한 구천 물에 용머리 하나가 떠내려가 분실(?)을 한 것이다. 

4) 관음사 산신각 용머리기단

홍수로 떠내려간 용화사 용머리의 행방은 한 동안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때인가 용머리의 행방이 밝혀졌다. 용머리는 구천이 낙동강과 만나는 지점인 구천 최하류 성하리에 있는 관음사 산신각 기단에서 발견됐다. 사연인즉슨 홍수에 떠내려 온 용머리를 한 동안 성하리  주민들이 구천 돌다리로 사용을 하다가 관음사로 옮겼다는 것이다. 두 용머리를 비교해보면 빛깔이나 마멸상태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크기나 생김새가 똑같아 한 쌍의 용머리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미륵당·용화사의 전신인 쌍계사 시절 구천을 바라보며 불법을 수호하고 물을 다스렸을 암수 한 쌍의 용화사 용머리기단. 지금은 이처럼 그리 멀지도 않은 거리를 두고 이산가족이 되어 있다. 

5) 에필로그

만나고 헤어짐에는 나름 이치가 있는 법이다. 도동서원 기단에 박혀 있는 4개의 용머리도 만났다 헤어짐을 반복한 내력이 있다. 한때 문화재절도범에 의해 도난당했다가 다시 되돌려 받았지만, 1개만 제자리에 꽂혀 있고 나머지 3개는 안동 한국학진흥원으로 보내졌다. 이처럼 나름의 슬픈 이별사연을 간직한 이산가족 용머리들. 그런데 이들 용머리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각자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잘 하고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스토리로 인해 문화유산으로서의 경쟁력을 갖췄으니 말이다.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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