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후 나가면서 ‘혹시 한약을 오래 먹으면 간에 나쁘지 않나요?’라고 걱정하는 환자들이 있다. 언젠가부터 한약을 먹으면 간이 나빠진다는 속설이 당연한 이야기처럼 되면서 약을 먹고 몸이 좋아지더라도 혹시나 간에 무리가 올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체질과 증상에 맞게 처방받아 복용하는 한약은 안전하다.’
‘한약=간독성’으로 인식된 것은 한 2003년 발표된 한 대학의 보고서에서 시작됐다. 전국의 55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간독성 원인물질을 조사한 보고서로 RUCAM라는 기존의 평가법 대신 modified RUCAM라는 수정된 방법으로 간독성 물질을 평가했다. 이 방법에 따르면, 한약을 먹고 3달 이내에 증상이 발생하거나 한약을 끊고 1달 이내에 증상이 없어지면 간독성의 원인을 한약으로 보는 것이다.
만약 3월 1일부터 보름간 한약을 복용한 뒤 더 이상 한약을 먹지 않더라도 3개월 이내에 증상이 나타나면 한약을 원인으로 본 것이다. 그 사이 술을 마시거나 항생제와 같은 양약 복용을 해서 간질환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한약 복용력이 있기 때문에 한약이 원인이 되는 평가법을 도입한 것이다. 다른 국가들은 항생제가 간독성 원인 1위로 보고됐으나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항생제를 가장 많이 쓰는 나라 중 하나인 우리나라에서는 항생제로 인한 간손상이 없다고 발표됐다. 2004년엔 담당교수가 보고서의 오류를 인정했지만 한약=간독성이다라는 속설은 여전히 퍼지고 있다.
이 보고서와 다르게 이후 발표된 수많은 논문에서는 한약으로 인한 약인성 간손상의 비율은 1.3~1.4%정도로, 약인성 간손상의 60%가 양약(특히 항생제)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낮은 결과를 보였다. 오히려 한약으로 만성 간염, 알콜성 간염 등 질환에서 효과가 있음이 발표됐고, 간 기능을 보호하고 간수치를 정상화하는 효능이 있는 다양한 처방과 약재들이 연구되고 있다. 일례로 간 보조치료제로 사용되는 밀크시슬의 경우, 대계(大薊)라는 한약재이며, 우루사의 경우 웅담(熊膽)이라는 한약재가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모든 한약재는 안전하냐?’라고 한다면 그렇지 않다. 우리 입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 음식, 영양제, 양약, 한약은 간대사를 거쳐 몸으로 흡수된다. 그래서 한약은 먹거리만큼 안전하다고 이야기되기도 하지만 간에 무리를 주는 약재도 분명히 있다. 몇 년 전 초오라는 독성 약재를 민간에서 달여 먹고 사망까지 이른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무분별한 과용·오용은 몸에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보생조한의원 원장 조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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