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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현장 사이] “침묵의 도시에서 불의에 맞서다” 2·28 민주화운동
  • 변선희
  • 등록 2026-02-23 11:58:57
  • 수정 2026-02-23 12: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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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등학생들의 결단,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첫 불꽃이 된 2·28 민주화운동

학교조회단에서 결의문을 낭독하는 경북고 이대우, 안효영

1960년 2월 28일.

일요일 오후,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교문을 박차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총도, 구호도, 조직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발걸음은 이후 대한민국 현대사를 뒤흔든 거대한 흐름의 시작이 됐다. 오늘 우리가 ‘4·19 혁명’으로 기억하는 민주주의의 서막은 이미 그해 2월, 대구의 고등학생들의 양심적 선택에서 이미 열리고 있었다.

 

1960년대 이후 이어진 군사정권, 그리고 지역의 정치적 보수화는 ‘민주’라는 단어조차 쉽게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언론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 폐간과 통제가 일상이었고, 불의에 대한 문제 제기는 곧 위험이 되던 시절, 대구에서 시작된 민주주의의 불꽃은 역설적으로 대구 시민들에게조차 충분히 알려지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2·28 민주화운동은 결코 돌발적 사건이 아니었다.

그 배경에는 자유당 정권의 장기집권 과정에서 누적된 불의가 있었다.


결의문 낭독 후 경북도청으로 가기위해 교문으로 뛰어가는 경북고등학교 학생들

학원의 자유를 달라는 구호를 외치며 경북도청으로 향하고 있는 학생 시위대의 모습

1954년 ‘사사오입 개헌’으로 대통령 연임의 길을 연 이승만 정권은, 1960년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골적인 부정과 압박을 서슴지 않았다. 고령의 이승만 대통령 이후 권력 유지를 위해 부통령 후보 이기붕을 당선시키려는 시도는 사회 전반에 불신과 분노를 키웠다.

 

결정적인 장면은 1960년 2월 28일을 앞두고 벌어졌다.

야당(민주당) 부통령 후보 장면의 대구 유세를 막기 위해, 자유당 정권은 8개 공립 고등학교(경북고, 대구고, 경북사대부고, 대구농고-현대구농업마이스터고, 대구상고-현대구상원고, 대구공고)에 ‘일요일 등교’와 ‘시험 강행’이라는 부당한 지시를 내렸다.

 

“왜 일요일에 시험을 봐야 하는가.”

“왜 특정 정치 일정에 맞춰 학생들이 동원돼야 하는가.”

 

이 질문을 처음 던진 이들은 교사도, 정치인도 아닌 고등학생들이었다.

 

2.28당시 학생 시위대를 막기 위해 경찰들이 출동했다.

시위 학생이 출동한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당시 경북고 학생부위원장이었던 고(故) 이대호를 중심으로, 경북고·대구고·사대부고 학생회 간부들은 밤늦게까지 논의를 거듭했다. 교장과 교감을 찾아가 부당함을 호소했지만, 돌아온 것은 침묵과 회피였고 결국 학생들은 결론을 내렸다.

 

“응할 수 없다.”

 

통금이 있던 시절, 학생들은 연합 시위를 결의했고 2월 28일 오후 1시경, 경북고를 시작으로 800여 명의 학생들은 거리로 나섰다. 이들의 시위는 곧 지역 언론을 통해 전국으로 확산됐다. 대전과 청주, 부산 등지에서도 학생 행동이 이어졌다.

 

이어진 3·15 부정선거는 민심의 분노를 폭발시켰고, 4월 18일 고려대생 시위와 다음 날 4월 19일 전국적 항쟁으로 이어졌다. 역사는 4월 19일을 민주혁명의 날로 기록하지만, 그 불씨는 이미 2월 28일 대구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이 때문에 2·28은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효시’로 평가된다.

 

두류공원 내 2.28민주운동기념탐(좌), 2.28기념중앙공원에 건립된 2.28찬가 노래비(우)

하지만 2·28이 역사적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990년대 들어서 시민사회 중심으로 기념사업회가 결성돼 인식 확산 활동을 이어왔고, 

2000년, 40주년 기념식에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김대중은 2·28 민주화운동을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출발점”으로 공식 규정했다.

이후 2010년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에 2·28이 명시되며 법적 지위를 확보했고, 2018년에는 마침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대구는 국채보상운동, 한글운동, 그리고 2·28 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사에서 굵직한 시민운동의 출발점이 된 도시다.

그렇기에 2·28 민주화운동은 거대한 이념의 외침이 아니었다.

부당함에 대한 질문, 그리고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었던 용기였다.

 

65년이 지난 지금, 그날 교문을 뛰쳐나온 고등학생들의 용기를 오늘의 우리는 얼마나 계승하고 있는가.

 

2·28은 끝난 역사가 아니다. 지금도 진행 중인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

일상 속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불의에 침묵하지 않는 태도, 그것이야 말로 2·28이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하는 과제가 아닐까.


*사진제공 :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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