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지난번 우리는 화원읍 천내천변에 있는 들럭소와 동계재에 대해 알아보았다. 천내천은 인흥리 동쪽 끝 비슬산 중턱 마비정과 용문 두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이 합친 것이다. 이 물은 인흥리를 동에서 서로 흘러 화원유원지에서 낙동강에 합류한다. 천내천 최상류에는 무엇이 있을까? 왼편 골짜기에는 마비정 벽화마을이 있고 오른편 골짜기에는 비슬산자연휴양림과 용문동천, 용문사가 있다. 이번에는 하늘이 내린 비경 용문동천과 그 위쪽에 자리한 용문사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2) 등용문과 용문동천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어, 특히 전통문화용어는 상당수가 고전에서 가져온 말이다. 그렇다보니 용어에 얽힌 고사를 모르고서는 용어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가 없다. 등용문·용문동천 역시 마찬가지다. 등용문(登龍門)은 중국의 역사서인 『후한서』 「이응전」 등에서 가져온 말이다.
중국 후한 때 이응이라는 올곧은 관리가 있었다. 그래서 젊은 관리들은 그와 만나는 것을 ‘용문에 올랐다[등용문]’ 하여 큰 영광으로 여겼다. 용문은 황하 상류에 있는 협곡으로 물살이 매우 빠른 폭포가 있다. 강과 바다에서 모여든 큰 물고기들도 이 폭포에서부터는 더 오를 수가 없다. 그래서 예로부터 전해지길 이 용문을 오른 물고기는 용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과거급제나 출세를 의미하는 등용문, 물고기가 변해 용이 된다는 어변성룡(魚變成龍), 이를 그림으로 표현한 약리도(躍鯉圖) 같은 말은 이 용문에서 유래한 것이다.
한편 용문동천(龍門洞天)은 용문이란 이름의 동천을 말한다. 동천에 대해서는 예전에 ‘대암동천’을 소개하면서 한 번 다룬 적이 있다.
동천은 당나라 현종 때 이름난 도교 도사였던 사마승정의 ‘천지궁부도’에 기원한다. ‘천지궁부’는 신선이 사는 곳을 말한다. 여기에 연유해 우리나라에서도 풍광이 뛰어나거나 은거하기 좋은 곳의 바위에 ‘○○동천’이라 바위글씨를 새기는 문화가 있다. 현재 대구에서는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 한덤이 마을에 있는 대암동천이 유일하다. 그런데 일부 지역민·향토사학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과거 화원읍 인흥리 자연휴양림입구에도 ‘용문동천’이라 새긴 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2010년 경 비슬산자연휴양림을 조성할 때 사라져 지금은 행방을 알 수 없다.
3) 아미타불을 모신 용문사 극락전
비슬산 용문사는 용문폭포 위에 있다. 말 그대로 등용문인 셈이다. 그런데 좁은 골짜기에 절이 자리한 탓에 주법당인 극락전을 비롯한 가람배치가 좀 어색하다. 동선을 따라 경내에 들어서면 극락전의 정면이 아니라 측면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용문사는 1937년 수월스님이 창건했다고만 알려져 있고 그 이전 내력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용문사 주변에서 옛 기와파편 등이 많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예전부터 이곳에 절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의 용문사는 역공당(力孔堂) 본운(本雲) 스님이 중창했다. 1992년 용문사에 주석한 본운 스님은 중창불사를 위한 천일기도를 시작, 2000년부터 극락전·정수당·양진당 등을 건립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2007년 입적한 스님의 부도는 용문사 입구 좌측 산기슭에 주인을 알 수 없는 부도 1기와 창건주 수월스님의 부도와 함께 있다. 용문사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겹처마 팔작지붕양식 건물이다. 내부에는 서방극락정토의 주재자이신 아미타부처를 주불로 하고 좌우에 자비의 화신 관세음보살과 지옥중생구제의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다. 그런데 용문사 경내에는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용왕대신을 모신 용왕각도 있는데 산신각이 안 보인다는 점이다. 필자가 알기로 우리나라 절 중에서 도심이 아닌 산중에 있는 절치고 산신각이 없는 절은 없다. 이는 우리나라 불교가 절터의 원 주인인 산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수용함으로써 나타난 우리나라 불교의 특징이다. 산신의 땅을 빌려 불국토를 세운 셈. 그런데 주변을 잘 살펴보면 용문사에도 산신각이 있다. 절 입구 우측 산기슭에 있는 다 허물어져 가는 작은 건물이 용문사 산신각이다. 이처럼 산신각이 방치된 것은 이유가 있다. ‘용문사 비슬산 산신 정성천왕 봉안불사’. 다시 말해 새 산신각을 짓기 위한 불사가 진행 중이란 뜻이다. 허물어져가는 옛 산신각. 얼핏 보면 흉물처럼 보인다. 그래도 어쩌랴. 건물도 사람도 수명을 다하면 허물어지고 죽는 법이니.
4) 비슬산신 정성천왕
우리는 사찰에서 매번 산신각을 만나지만 산신각 안에 모셔진 산신 이름은 잘 모른다. 그냥 팔공산 산신·비슬산 산신 정도로만 알고 넘어간다. 그런데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산신들도 이름이 있다. 해인사 국사단에 모셔진 가야산 산신 이름을 ‘정견모주[女]’라 칭하듯이 말이다. 이처럼 비슬산 산신도 예로부터 정성천왕 혹은 정성대왕이라 칭했다. 정성천왕은 신라·고려시대 때 사용된 것으로 비슬산 산신을 불법을 수호하는 불교신으로 재해석한 명칭이다. 이에 반해 정성대왕은 조선시대 때 사용된 것으로 숭유억불에 따라 불교신이었던 ‘천왕’을 산신 혹은 국사신인 ‘대왕’으로 바꿔 붙인 칭호다.
5) 에필로그
용문사 입구에 있는 용문폭포는 규모는 작지만 폭포 좌우로 깎아지른 듯 높이 솟아있는 암벽이 있다. 그래서 그 아래에 서면 마치 협곡이나 동굴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폭포 아래에서 고개를 들어 좌측 암벽을 따라 바위 표면을 잘 살펴보면 여러 바위글씨를 찾아볼 수 있다. ‘龍門’·‘李亨運(이형운)’·‘雨帆(우범) 郭在憲(곽재헌)’·‘文鳳來(문봉래)’ 등. 인흥마을 출신 한말 선비인 수봉 문영박 선생도 생전에 이곳 용문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1900년대 초반까지도 암벽에 새긴 선생의 시가 남아 있었다는데 지금은 눈에 띄지 않는다.
‘삼년동안 용문에 이르지 못했는데 / 암벽에 쓴 시는 아직도 흔적이 남아 있네 / 지난날 온갖 생각에 한참을 잠겨있으니 / 어둑어둑 아련한 빛 황혼이 찾아드네’ (문영박 시)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