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슨이 1300여 개의 발명품을 남겼다면, 그 발명품을 평생 수집한 사람이 있다. 바로 수집가 석완일이다."
경북 경주시 보문로에는 유성기·카메라·전화기 등 에디슨의 혁신적인 기술들을 보존하고 전시중인 '에디슨 소리역사관'이 있다.
에디슨은 1941년 84세로 별세할 당시, 유성기·전화기를 비롯해 우리 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전기 등 1천3백여 가지에 이르는 다양한 발명품을 남기며 전 세계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유성기 기술은 미국에서 시작해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달되었으며, 석완일 수집가는 이 기술들을 통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진 문물을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를 바랐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에디슨에 푹 빠져 에디슨의 발명품에 큰 관심을 가졌고, 그 관심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취미로 이어졌다. 성인이 되어 은행에 취직한 이후, 월급을 받으면 하나씩 발명품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고, 외국에서 생산된 유성기와 같은 고급 기기들은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석완일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선진 문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 선진 문물을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길 바란다”며, 이 기기들을 하나하나 수집했다.
‘음악이 머무는 기계’라는 유성기(留聲機)가 조선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질 때는 1899년 3월이다. 일제 강점기 때 기록에는 축음기(蓄音機)라는 말이 많이 나타난다.
이러한 유성기는 미국에서 시작되어 일제 강점기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해방 후에야 본격적으로 대중적이며 상업적인 유행을 이끌었다. 당시 일본이 제작한 유성기음반이 먼저 유입되었는데 남인수, 백년설, 백설희와 같은 유명 가수들의 음반이 1940년대 처음으로 녹음되었다.
석완일 수집가의 소리역사관에서는 여전히 손으로 핸들을 돌려 태엽을 감고 쇠바늘을 꽂아서 소리를 듣던 유성기로 1910년대 귀한 음반도 들을 수 있다.
석완일 수집가는 “폐교를 구입해 자료를 보관하면서, 이 곳에 전시공간을 마련하였다”며 “나팔형 유성기는 미국에서 구입해서 가져왔다. 미국을 오가며 눈에 뜨이는 데로 수집한 것이 이만큼 많은 자료로 쌓였다”고 얘기한다.
이 곳 전시장에는 유성기뿐 아니라 맨 처음 등장한 벽걸이형 전화기부터 다이얼형 전화기까지, 에디슨이 최초로 발명한 활동 사진기와 카메라의 변천사도 만날 수 있다.
그가 손으로 감아 들려준 유성기에서 애잔한 선율이 흘러나오고 가만히 멜로디를 따라 부르는 그의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가 퍼져 나온다.
석완일 수집가는 “발명품을 수집하는 것은 단순히 물건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그 것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잃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며, “에디슨이 남긴 발명품은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한다” 고 말한다.
그의 수집품은 단순히 개인적인 소장품이 아닌 역사적 의미가 담긴 가치를 알아보고 소중하게 간직해 온 것이다. 그가 모은 자료들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마음이다.
석완일, 그는 단순한 수집가를 넘어, 에디슨의 발명품을 통해 시대의 흐름과 그 가치를 후세에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다.
▷에디슨 소리역사관은 경북 경주시 보문로 529에 있으며, 문의는 010-3503-1881로 하면된다.
저작권자 © 푸른신문와이드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