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며칠 전 도동서원을 주제로 방송출연에 응한 적이 있었다. 당시 담당 PD 손에 들려 있는 콘티를 보니 도동서원뿐만이 아니라 한훤당 김굉필 선생 묘소와 한훤당 셋째 따님 묘소에 대한 내용도 들어 있었다. 많은 것을 담아 가겠다는 의도였다. 500년 내력을 지닌 한훤당 선생 묘소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많은 스토리가 녹아있는 공간이다. 이번에는 한훤당 묘소를 중심으로 ‘역장’, ‘셋째 따님 묘소’, ‘세호’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2) 역장, 조선전기까지는 관례
역장(逆葬)이라 함은 묘를 씀에 있어 위아래 위치가 뒤바뀌었다는 말이다. 여러 기의 묘가 한데 모여 있는 선영을 보면 제일 위쪽에 제일 윗대 조상 묘가 있고, 그 아래로 대수의 내림차순에 따라 순서대로 묘가 있다. 이는 높은 곳이 곧 윗자리라는 예절방위에 기인한 탓이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에서 한훤당 선생 묘소를 보면 무척 당황스럽다. 선생보다 훨씬 뒤에 돌아가신 정경부인의 묘가 선생 묘 바로 위쪽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남편 묘 위에 부인 묘가 있는 것이다. 어찌된 것일까. 여자가 위에 있고 남자가 아래에 있으니 말이다. 이는 조선전기까지만 해도 위쪽에 대수가 빠른 분을 모시고, 아래쪽에 늦은 분을 모신다는 장묘예법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법은 임란 이후 조선사회에 『주자가례』가 본격적으로 정착되면서부터 형성된 장묘문화다. 따라서 조선전기 이전에 조성된 선영의 경우 이러한 역장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우리 고장에서는 구지면 대암리에 있는 망우당 곽재우 장군 선영을 예로 들 수 있다. 곽재우 장군의 조부 묘가 증조부 묘 위에 있고, 장군 자신의 묘도 부친 묘나 숙부 묘보다 위쪽에 있기 때문이다.
3) 셋째 따님의 묘가 왜 여기에
한훤당 선생 묘소 가는 길에 셋째 따님의 묘소가 있다. 친절하게도 안내판이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출가외인(出嫁外人)이라는 정서가 만연했던 조선시대에 어찌해서 출가한 딸의 묘가 친정 부모님 묘소 아래에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한훤당 선생의 셋째 따님인 숙부인 김씨는 인근 고을인 성주 지촌(枝村)에 사는 청주정씨 문중의 정응상에게 출가했다. 친정 어머니인 정경부인이 병중에 있을 때 숙부인 김씨는 여러 차례 미음을 끓여 가슴에 품고 백리길을 마다하지 않고 친정을 내왕했는데, 그때마다 미음이 식지 않고 먹기에 적당했다고 한다. 이에 정경부인은 자신이 죽은 후에도 셋째 딸을 곁에 두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결국 시댁의 허락을 받아 숙부인 김씨는 이곳 친정곳에 묻히게 되었다.
한훤당 선생의 외증손자이자 한훤당과 함께 도동서원에 배향된 한강 정구가 바로 정응상의 손자다.
4) 세호, 다람쥐로 보았다
한훤당 선생 묘소 아래에 자리한 도동서원 기단부에는 ‘세호(細虎)’라고 칭하는 재미있는 석조물 2기가 있다. 기단을 마주보았을 때 좌측 세호는 내려가고 우측 세호는 올라가는 형상이다. 이름대로라면 세호는 작고 귀여운 호랑이라야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다람쥐 같기도 하고 도룡뇽 같기도 한 것이 어쨌든 묘하게 생겼다. 일반적으로 세호는 묘소에서 볼 수 있는데 망주석에 새겨져 있는 동물이 바로 세호다. 세호는 일반 사가 묘소뿐만이 아니라 조선왕릉 망주석에도 새겨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녀석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쾌한 설명이 없다. 그나마 설득력을 얻고 있는 몇 가지 주장을 필자 나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세호는 상서로운 동물을 말하는데 크게 보면 민속과 풍수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민속에서는 세호를 다람쥐 또는 도룡뇽으로 본다. 다람쥐로 보는 것은 다산(多産)을 의미한다. 가을철이 되면 기약 없이 도토리를 땅에 묻는 다람쥐 덕분에 산에 참나무가 울창하듯이 자식 번창을 기원한다는 의미다. 도룡뇽으로 보는 것은 도룡뇽을 이승과 저승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존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이승과 저승 사이에는 물이 흐르고 있고, 망자들은 이 물을 두려워 한다는 공통된 저승관이 있다. 그래서 이승과 저승을 오가기 위해서는 수륙양서류인 도룡뇽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제삿밥을 먹기 위해 아들, 손자네 집으로 가려면 물을 건너야 하는데 이때 망주석에 새겨져 있는 도룡뇽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다. 한편 풍수에서는 세호로 인해 묘소가 명당이 될 수도 있고, 흉지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대개의 경우 봉분을 등지고 섰을 때 좌측 망주석 세호는 올라가고 우측 망주석 세호는 내려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좌를 오를 양, 우를 내릴 음으로 보는 동양의 좌우 음양관에 연유한 것이다. 따라서 망주석에 새겨진 상서로운 동물의 운동 방향성도 양[왼쪽]의 방향에서는 올라가고 음[오른쪽]의 방향에서는 내려오는 것이 자연의 이치에 맞다. 그래야 땅속에 누워 있는 망자도 편안하고 망자의 후손들 역시 편안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종종 ‘좌상우하’가 아닌 ‘좌하우상’의 세호도 볼 수 있다. 이때는 땅 속에 누워있는 망자도 고통을 받고 그 후손들도 고통을 받는다고 하는데 이는 누군가가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행한 것이라고 풀이를 한다.
한훤당 선생과 정경부인 묘소 망주석에는 ‘다람쥐’ 세호가 새겨져 있다. 두 경우 모두 세호 머리 앞에 어떤 물건이 놓여 있는데 선생의 경우는 도토리[밤]가 확실하고, 정경부인의 경우는 좀 애매하다.
5) 에필로그
음력 10월이 되면 우리나라 전국 산야의 묘소가 어수선해진다. 바로 묘사철이기 때문이다. 통상 묘사[묘제]는 4대봉제사를 마친 5대조 이상의 묘에서 지내는 제사다. 그런데 한훤당 선생 묘사는 좀 특별한 점이 있다. 문중이 아닌 도동서원이 주관해서 묘사를 봉행한다는 점이다. 한훤당 김굉필 선생은 한 문중을 넘어 국가와 사림이 받드는 인물인 만큼 그에 걸맞게 서원에서 묘사를 받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이처럼 서원에서 주관하여 한훤당 선생 묘사를 봉행하는 예법은 선생의 외증손자이자 셋째 따님인 숙부인 김씨의 친손자인 한강 정구가 정립한 예법이다.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