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은 자아 존중감의 줄임말로서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을 의미한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인식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책임을 지고, 목표가 있는 삶을 살면서 정직한 인격을 갖추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프랑스 속담에 ‘서글픈 표정을 한 성인은 참된 성인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자기가 서글픈 표정을 짓고서야 어찌 남의 마음을 가볍게 해줄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에 대해 만족해야 한다. 자신이 세상을 밝게 보는 마음, 이것이 희망을 불러온다. 자존감 높은 사람이야말로 더 큰 희망을 품고 인생을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떫은 감은 열등감이고, 가장 맛있는 감은 자신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인문학자인 에라스무스의 역작 ‘우신예찬’을 자존감의 관점에서 주목하는 것은 꽤 흥미롭다. 에라스무스는 이 책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니, 내가 나를 칭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나를 사랑하지 않고 어찌 남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없다”고 하여 자기애(自己愛)와 자존감이 사랑의 출발이라고 간파했다.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가곡(歌曲)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작곡가 로시니의 작품이다. 이 가곡은 한 재치 있고 눈치 빠른 이발사의 기지와 지혜로 어느 백작이 마음에 드는 여자와 결혼을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로시니의 생애를 보면, 그 음악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그는 백정(또는 트럼펫 연주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세기적 작곡가가 됐다.
차이코프스키도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많은 실패를 겪었지만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깊이 감동하는 ‘비창 교향곡’을 탄생시켰으며, 악성(樂聖) 베토벤 역시 아버지가 술주정뱅이였고 만년에는 귀머거리가 됐지만 ‘영웅’, ‘운명’, ‘전원’ 교향곡을 작곡했다. 이처럼 고통을 이긴 사람들은 그러한 불행이 없었다면 오히려 그것을 극복할 힘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일제 강점기의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 이야기가 있다. 당시 일본인 관리가 한글 연구를 방해하려는 목적으로 그를 찾아와 벼슬과 재물을 많이 줄 테니 함께 한글을 연구하자고 했다. 이것은 주시경 선생을 꼬여내어 더 이상 한글 연구를 못하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주시경 선생은 일본 관리의 제안에 “필요 없소! 일본의 관리가 되어 풍족하게 사는 것보다 한글을 연구하며 가난하게 사는 게 훨씬 좋소!”라고 소리치며 일본인 관리를 돌려보낸 일화가 있다. 이러한 용기는 주시경 선생이 한민족과 우리나라 고유의 글인 한글에 대한 강한 자존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 사막을 건너가는 것은 용맹한 사자가 아니라 낙타이고, 식탁을 지키는 것은 거대한 고래가 아니라 새우이듯이, 우리는 각자 자기 자신이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이며 스스로 긍지를 가질만 하다는 자존감을 가져볼 만하지 않겠는가!
잊지 마시라! 당신도 누군가의 영웅이란 사실을...
구용회 건양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