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우리 고장인 달성군 화원읍 본리2리 비슬산 골짜기 해발 200m 고지에 그림 같이 예쁜 산골마을이 하나 있다. 근래 들어 대구는 물론 전국적으로 소문이 난 ‘마비정 벽화마을’이다. 변변한 농토 하나 없는 하늘 아래 첫 동네이자 이름도 절도 없던 이 작은 산골마을이 어떻게 해서 이렇듯 전국적인 관광명소가 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오래된 이야기와 새롭게 탄생한 그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번에는 마비정 벽화마을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2) 벽화마을
대략 십 여 년 전부터 전국적으로 ‘벽화마을’이 뜨기 시작했다. 서울 이화벽화마을·통영 동피랑마을·부산 안창마을 등. 이들 벽화마을은 2006년, 2007년부터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도시재생은 도시재개발과는 완전히 다르다. 낡고 오래된 것을 없애고 그 위에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도시재개발이라면, 도시재생은 낡고 오래된 것을 유지한 채 그 위에다 새로운 가치와 기능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처럼 도시재생과 도시재개발은 ‘재생산’·‘재창조’라는 측면에서는 서로 유사하지만, 지난 과거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를 두고는 서로 상반된 접근방식을 보인다. 최근 우리나라 벽화마을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대체로 역사가 적당히 오래된 낡은 마을이라는 점이다. 마을역사 100년 안쪽, 낡고 오래된 집·담장·골목, 서민층 거주 지역. 그런데 마비정 벽화마을은 이들 벽화마을들과 비교했을 때 좀 남다른 특징이 있다. 근대기에 형성된 마을이 아닌 수 백 년의 역사를 지닌 마을이라는 점과 도시마을이 아닌 산골마을이라는 점 그리고 마을전체의 벽화가 한 사람의 작품이라는 점 등이다.
3) 벽화만큼 예쁜 이름, 마비정
세상사 평지돌출은 쉽지 않다. 덤불이 있어야 토끼가 있듯이 한 뼘이라도 바탕이 있어야 돌출이 쉬운 법이다. 마비정 벽화마을도 마찬가지다. 벽화 하나만 가지고 지금과 같은 전국적인 유명세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 마을에는 벽화가 그려지기 수 백 년 전, 이미 ‘비무와 백희’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밑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다. 비슬산 산골마을에 하루 천리를 달린다는 수말 비무와 아름다운 암말 백희가 대나무 숲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비무는 꽃과 약초를 구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났고 대나무 숲에는 백희만 남았다. 그때였다. 전쟁터에 타고 갈 천리마를 구하고 있던 장수 마고담의 눈에 백희가 들어왔다. 백희를 비무로 착각한 마고담은 백희에게 자신과 함께 전쟁터에 나가기를 제안했다. 백희는 비무가 전쟁터에 나가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이 마치 비무인양 마고담의 제안을 받아 들였다. 그런데 마고담은 길을 떠나기 전에 천리마의 실력을 한 번 보고 싶었다. “천리마는 화살보다 빨리 달린다 하니 저 건너편 바위까지 화살이 빠른지 네가 빠른지 한 번 시험해보마.” 마고담이 활을 쏘자 백희는 죽을힘을 다해 내달렸다. 하지만 백희는 화살을 따라잡지 못했다. 이에 화가 난 마고담은 단칼에 백희의 목을 베어 버렸고, 백희는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서 죽어갔다. 한참 뒤 대나무 숲으로 돌아온 비무는 백희의 주검을 보고 며칠 밤낮을 슬피 울다가 마을을 떠났다. 그날 이후 마을에서 비무를 본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매일 백희의 무덤가에 새 꽃과 새 약초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비무가 다녀갔음을 알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나라에 큰 역병이 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마을만은 역병이 돌지 않았다고 한다. 마을사람들은 백희의 무덤에 놓여 있는 꽃과 약초로 때문이라고 믿었다. 후일 마고담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이 마을에다 마비정(馬飛亭)이란 이름의 정자를 짓고 이곳에서 여생을 마쳤다. 이때부터 세상 사람들은 이 마을을 마비정이라 불렀다.
한편 마비정을 ‘마비정(馬飛井)’으로 쓰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유래설이 좀 다르다. 예전에는 재 너머 가창이나 청도 사람들이 한양 길을 가거나 화원장을 다닐 때면 늘 이 마을 정자에서 잠시 쉬어갔다 한다. 그런데 이 마을 정자 옆 우물 맛이 얼마나 좋았던지 사람들이든 말이든 이 물을 마시고나면 원기를 회복해 마치 날아갈듯 내달린다고 하여 마비정이라 했다는 것이다.
4) 마비정, 물감에 물들다
비무와 백희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남아 있는 마비정. 사람과 말에게 기운을 북돋워 주었다는 마비정. 이 같은 흥미로운 스토리가 전해지던 마비정 마을 담벼락에 어느 날부터 하나 둘 벽화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벽화가 완성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 사람들은 이 마을을 ‘마비정 벽화마을’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2012년 5월부터 약 3개월간에 걸쳐 진행된 마비정 마을 벽화작업은 ‘이재도’라는 단 한 명의 지역출신 화가에 의해 진행되었다. 대부분의 벽화마을이 여러 작가들의 공동 작품인데 반해 마비정은 한 작가의 작품이다 보니 그림이 산만하지가 않고 화풍에 일관성이 참 좋다. 마비정 벽화는 1960-1970년대 농촌풍경을 주로 담고 있다. 장승·오누이·누렁이와 지게·얼룩이와 점박이·움직이는 소·난로 위 도시락·마비정 전설 등. 황토 빛 흙 담장에 그려진 벽화를 감상하노라면 자연스레 옛 추억이 떠오르고 입가에 미소가 피어난다. 마비정에는 벽화 말고도 연리목·연리지·국내 최고령 옻나무·대나무 터널 길·물레방아와 마비정 우물·남근석과 거북바위·농촌체험장 등 많은 볼거리가 있다. 참고로 마비정 벽화마을은 2013년 도시 대상, 2015년 대한민국 경관 대상 최우상을 수상했다.
5) 에필로그
예로부터 마비정 주변 산야에는 약초가 많이 났고, 마을에는 약초방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비무와 백희의 전설이 거짓은 아니었나보다. 그건 그렇고 마비정을 다녀올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마비정은 그림 같이 예쁜 산골마을일까? 아니면 예쁜 그림이 그려진 산골마을일까?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