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지난 2019년 7월 6일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낭보가 전해졌다. 우리나라의 서원 9곳이 ‘한국의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된 것이다. 이번의 등재는 한국의 서원이 오랜 세월 동안 교육과 제사라는 성리학적 전통문화를 지속적으로 이어온 점을 인류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로 인정한 결과다. 도동서원이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유산이 된 만큼 이번에는 아는 사람들만 안다는 도동서원의 숨은 보물 쌍귀부와 벽화에 대해 한 번 알아보기로 하자.
2) 한훤당김굉필선생신도비와 쌍귀부
신도비(神道碑)는 임금이나 2품 이상의 벼슬을 지낸 인물에 한해 묘소 인근에 세운 비를 말한다. 주로 묘소의 동남쪽에 남향으로 세우는데 신령이 다니는 길을 상징적으로 표시한 것이다. 비의 구조는 대체로 상·중·하 3단으로 구성된다. 비문이 새겨져 있는 가운데 몸돌을 중심으로 아래쪽에는 받침돌에 해당하는 귀부(龜趺), 위쪽에는 머릿돌에 해당하는 이수(螭首)가 있다. 받침돌을 귀부라고 하는 것은 그 형태가 거북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고, 머릿돌을 이수라고 하는 것은 그 형태가 용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귀부는 신라, 고려시대까지는 주로 용머리를 취하다가 조선시대에 오면 거북머리로 바뀐다. 그런데 1개이어야 할 귀부의 머리가 매우 드물게는 2개로 나타나는 예가 있는데 이를 특별히 쌍귀부(雙龜趺)라 한다. 현재 국내에는 모두 4기의 쌍귀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주에 3기, 포항에 1기인데 모두 신라시대의 사찰유물로서 비의 몸돌과 머릿돌은 사라지고 받침돌인 쌍귀부만 남아 있다. 이쯤에서 아래의 글을 한 번 읽어보자. 참고로 이 글은 ‘국제신문’(2012. 3. 2.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 유물해설 담당 민학기)에 실린 글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이 쌍귀부는 9세기 초에 느닷없이 나타났다가 9세기 말에 갑작스럽게 사라져버렸다. 이렇듯 한 시대를 풍미하다 사라진 쌍귀부는 양식사에 있어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이 같은 쌍귀부가 어떤 의미로 조성되었고 또 어디에 남아있으며, 왜 후대에 전해지지 않고 갑자기 자취를 감추게 되었는지 등의 비밀을 풀어보는 것도 유적답사 여행의 한 묘미일 것이다. 현재 쌍귀부는 경주 암곡동 무장사지와 경주 배동 창림사지, 포항 신광면 법광사지, 경주 외동읍 숭복사지 등 네 곳에만 남아 있다…
이처럼 국내에 4기만 있는 것으로 알려진 쌍귀부. 그런데 보다시피 우리고장인 달성군 도동서원에 1기가 더 있다. 기존의 것들과 비교했을 때 도동서원의 쌍귀부는 조선후기인 1625년에 조성된 국내 유일의 조선시대 쌍귀부이자, 몸돌과 머릿돌까지 모두 완벽하게 갖춘 우리나라 유일의 쌍귀부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머릿돌과 몸돌이 한 몸이라는 놀라운 사실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 등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훤당선생신도비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 않다.
3) 설로장송, 강심월일주
도동서원의 또 다른 보물은 사당에 있다. 세칭 도동서원 사당벽화로 알려진 2점의 벽화가 그것이다. 이 벽화는 사당 창건 당시(1604년)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밖에서 사당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좌·우 벽면 상부에 각각 한 점씩이 있다. 벽화의 제목은 좌측이 ‘강심월일주(江心月一舟)’, 우측이 ‘설로장송(雪路長松)’인데 제목이 벽화에 묵서로 남아 있다. 이 벽화는 햇빛이 들지 않는 실내벽화여서인지 보존상태가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누가 그린 작품인지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도동서원 측의 주장에 의하면 이 벽화는 조성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손을 댄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 등에 대한 기록이 전무한 탓에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있다. 사실 도동서원 사당은 건물자체가 담장·강당과 함께 보물 제350호로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이 벽화는 건축물과는 별개로 회화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제대로 한 번 평가받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 사찰문화재의 경우 법당과 그 내부에 있는 불상·탱화 등이 독립적으로 각각 문화재로 지정되는 예가 많다.
4) 에필로그
지금까지 살펴본 도동서원의 한훤당선생신도비 쌍귀부와 사당벽화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유물들이다. 이는 신도비각과 사당이라는 매우 폐쇄적인 성격의 건축물 안에 이 유물들이 있은 탓이다. 그런 까닭에 지금까지 비밀을 유지하면서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하지 않을까?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 등재를 계기로 이들 유물들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그 가치를 세상과 공유해야하지 않을까! 그래야 유네스코가 인정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라는 의의에 걸 맞는 일이 아닐까.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