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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56. 광산이씨 세거지, 씩실마을(1)
  • 푸른신문
  • 등록 2019-02-2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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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달성군청에서 고령·현풍방면으로 위천 삼거리를 조금 못미처 재미있는 도로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승호교차로에서 만날 수 있는 ‘씩실마을’과 조금 더 가서 만날 수 있는 ‘안씩실마을’이정표가 그것이다. 혹시 독자들 중에서도 필자처럼 이 이정표를 볼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거렸을 분들이 있지 않았을까? ‘씩실’이라는 마을은 도대체 어떤 마을일까?


2) 씩실마을의 유래


대구방면에서 가자면 ‘씩실마을’은 위천 삼거리를 약 1km쯤 남겨두고 우측에 자리한 마을이고, ‘안씩실마을’은 반대로 좌측 산자락 안쪽에 자리한 마을이다. 이 일대를 한데 묶어 지금은 ‘삼리리(三狸里)’로 부르고 있다. 이는 ‘세 곳의 살쾡이 마을’이라는 뜻으로 외리·중리·내리, 다시 말해 ‘씩실·바끗씩실·안갱이·안씩실’ 등의 옛 자연부락들을 한데 묶어 부르는 현대식 지명이다. 동명에 살쾡이[삵]를 의미하는 리(狸)자가 사용된 것은 이 지역 산의 형세가 마치 삵을 닮은 형국이라 해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삵’ 발음이 나중에 ‘씩’으로 변하면서 지금의 ‘씩실[狸谷]’이 된 것이란다. 참고로 ‘실’은 ‘곡(谷)’의 순수한 우리말 표현이다. 한편 씩실을 예전에는 ‘승호(承湖)’라고도 불렀다. 낙동강 연안인 씩실은 예전에 마을과 낙동강 사이에 거대한 호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이름을 호수 호자를 써서 승호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지금도 이곳 씩실마을 북쪽에는 작지 않은 규모의 ‘씩실늪’이 있기 때문이다. 씩실은 이러한 독특한 마을 이름만큼이나 눈에 띄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바로 광산(光山)이씨 집성촌이자, 달성을 빛낸 광산이문 출신의 훌륭한 선비들의 발자취가 남겨진 곳이라는 점이다.


3) 광산이씨 씩실마을 입향내력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인 광산이씨의 경우 두 가지 시조설이 있다. 하나는 ‘이종금(李宗金)’이라는 인물을 시조로 보는 설이며, 다른 하나는 ‘이정(李靖)’을 시조로 보는 설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간에 9세 ‘이순백·이숙백·이승백’ 3형제를 광산이씨 3대 중시조로 받드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참고로 광산이씨 3대파는 장자인 이순백의 상서공파, 둘째인 이숙백의 한림공파, 셋째인 이승백의 제학공파이다. 이중 영남에 세거하는 광산이씨들은 주로 한림공파이다. 한림공파가 영남에 자리 잡게 된 것은 이숙백의 현손[고손자]인 이근생 때부터였다. 진사를 지낸 이근생이 친형인 동부승지 이권생과 함께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키고자 벼슬을 내려놓고 성주 고탄리로 내려왔으니, 이로서 광산이씨 영남 입향조가 된 것이다. 이근생의 후손들이 다시 우리고장인 달성 씩실에 세거하게 된 것은 이근생의 5세손인 이서·이난미 때부터였으니,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의 일이다. 그 뒤 20세기 초 일제강점기 때에 이르러, 이번에는 이난미의 사촌형인 이당의 후손들이 씩실로 들어왔다. 이러한 내력을 거쳐 지금의 ‘씩실 광산이씨 세거지’가 형성되었다. 


4) 삼처사(三處士), 삼세십이현(三世十二賢)의 후손


광산이씨 문중에는 ‘영남파 현조 삼처사 선부군 이수’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광산이씨 영남파에서 이름난 선조이자 삼처사의 아버지인 이수라는 뜻이다. 광산이씨 영남파는 영남 입향조 이근생의 손자 대에 와서 다시 3개 파로 나눠진다. 이창손의 칠곡파·이한손의 성주파·이신손의 합천파가 그것이다. 이중 성주파 이한손의 아들이 이수(李樹·1510-1542)이다. 이수는 28세 때인 1537년에 무과에 급제, 훈련원봉사로 지금의 마산인 합포 절도영에서 근무 중 안타깝게도 3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당시 이수는 슬하에 3남2녀를 두었는데 아들, 딸 구별 없이 하나같이 특별났다. 특히 이홍기·이홍량·이홍우 3형제는 ‘삼처사’ 또는 ‘영남선행삼용(嶺南善行三容)’이라 불릴 만큼 덕행과 효행이 특별났다. ‘삼용’이라는 표현은 이들 삼형제의 자가 각각 백용·중용·계용인 것에 연유한 것이다. 또한 『성주향안』에는 이들 삼형제와 그 아들·손자 3대에 걸친 12명을 일컬어 ‘삼세십이현’이라 기록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홍량·이홍우는 ‘낙강칠현(洛江七賢)’의 일원이기도 하다. 낙강칠현은 달성·고령·성주 지역 중에서도 낙동강을 끼고 있는 지역을 대표하는 7명의 큰 선비 말한다. ‘이홍량·이홍우·이기춘·김면·정구·박성·이승’이 그들이다. 참고로 선생의 사위들 역시 대단한 인물들인데 놀라지 마시라. 암서 이침과 한강 정구가 바로 선생의 사위이다.


5) 일유이생득이자(一乳而生得二子)


‘일유이생득이자’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참고로 이 말은 위에서 언급한 삼처사 3형제에 대해 기술할 때 첫머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표현이다. 직역을 하면 ‘한 번 출산에 두 아들을 얻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유(乳)’자는 ‘유방·젖(먹이다)·기르다·어머니’라는 뜻과 함께 ‘아이를 낳다’라는 의미를 지닌 글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 표현은 한마디로 ‘쌍둥이를 얻었다’는 말이다. 참 재미있는 표현이다. 필자가 알고 있는 이런 류의 한문 표현들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도 있다.
‘천축고선생댁(天竺古先生宅)’ 역시 직역을 하면 ‘천축(국) 옛 선생 집’이 되는데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집, 절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실제로 이 표현은 옛 선비들의 문집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한자·한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답답하고 어렵다는 선입관을 갖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어떤가? 보다시피 의외로 재미있는 면도 있지 않은가? 씩실마을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회에 계속 이어가기로 하자.
<다음에 계속>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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