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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51. 비슬산 대표 사찰 유가사
  • 푸른신문
  • 등록 2019-01-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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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2019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 첫날, 필자는 비슬산 일대의 몇 몇 절집들을 돌아보았다. 신년의 시작을 비슬산의 절집들과 함께 시작한 셈이다. 이번 이야기는 달성군 유가면 양리에 자리한 유가사에 대한 이야기다. 유가사는 두 가지 창건설이 전한다. 하나는 767-780년 신라 혜공왕 때 창건되었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827년(흥덕왕 2)에 도성국사가 창건했다는 설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200년 전에 창건된 유가사는 과연 어떤 곳일까.


2) 비슬산을 대표하는 사찰


‘북팔공 남비슬’의 한 축인 비슬산. 비슬산에는 많은 절집들이 있다. 용연사·유가사·대견사·소재사·남지장사·용문사·수도암·도성암 등등. 그런데 이들 중에서 비슬산을 대표하는 절집 하나를 들라면 어느 것을 들 수 있을까? 필자는 유가사라고 답을 하고 싶다.
유가사는 이미 절집 이름에 비슬산 대표사찰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비슬산을 한자로 쓰면 ‘琵瑟山’이다. 옥(玉)이 4개나 보인다.[임금 왕(王)자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구슬 옥(玉)이다.] 따라서 비슬산은 머리에 옥구슬을 이고 있는 산이란 풀이가 가능하다. 유가사(瑜伽寺)는 한자로 ‘옥 유·절 가’, 옥구슬 절이다. 이 둘을 합쳐보면 옥구슬 산[비슬산]에 있는 옥구슬 절[유가사]이 바로 유가사가 되기 때문이다.
한편 비슬산이라는 산 이름이 힌두신인 비슈누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유가사란 절집 이름 역시 고대 인도어를 한자로 옮긴 것이라는 설이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요가[yoga]를 한자로 옮긴 것이 바로 ‘유가’라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비슬산 내의 여러 절집들 중에서 절집 이름을 산 이름처럼 범어에 기원을 두고 있는 사찰은 유가사가 유일할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유가사가 자리 잡은 터에서도 특별함을 엿볼 수 있다. 유가사 경내에서 대웅전 지붕 위쪽을 바라보면 비슬산 최고봉인 천왕봉(1,084m)과 병풍바위 그리고 유가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마치 옥구슬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것처럼. 비슬산 내 절집들 중에서 비슬산 최고봉인 천왕봉을 법당 머리 위에 이고 있는 사찰은 아마도 유가사가 유일할 것이다.


전성기에는 3,000여 명의 승려들이 머물렀으나, 임진왜란의 전화로 소실되었다. 그 뒤 1682년(숙종 8)에 도경화상이 대웅전을 보수하였으며, 다시 1772년(영조 48)에 낙암선사가 중수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반포된 「31 본사 사찰령」에는 유가사가 동화사의 수반말사(首班末寺)로 되어 있어 당시 유가사의 사세가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디지털달성문화대전]


3) 산지중정식 가람배치의 정형


유가사는 비슬산 서쪽 기슭 해발 415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산중턱에 자리 잡은 유가사는 산지중정식(山地中庭式) 절집 양식을 보인다. 이는 경사가 심한 지형을 상·중·하 3단으로 조성하여, 상단의 중정[가운데 뜰]을 중심으로 예불공간인 전각들을 배치하는 것을 말한다.
유가사의 진입 동선은 하단·중단·상단의 중심축선상에 놓인 사천왕문·범종루·시방루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좁고 어두운 누문을 몇 번 통과해야 비로소 트인 세상, 대웅전을 만날 수 있다. 이러한 긴장과 이완을 통해 사람들은 세속과 부처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데, 저 유명한 영주 부석사에서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유가사의 절집배치를 한 번 보자. 중정에 서서 대웅전을 마주 보면 뜰 좌우로 각각 1기씩의 3층 석탑 및 요사채가 있다. 대웅전 좌측에는 나한전·염화실이 있고, 우측에는 관음전·유가사 석조여래좌상이 있으며, 대웅전 뒤편에는 산령각이 있다. 그리고 대웅전 맞은편에는 시방루, 범종루, 사천왕문 등이 있다. 그런데 시방루 우측 키 큰 노송들 사이로 작은 목조건물 하나가 눈에 띈다. 국사당이다.


4) 산령각은 산신을, 국사당은 토지신을


사찰에는 여러 전각들이 있다. 그중에는 산신각·칠성각·용왕각처럼 불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 전각들도 있다. 유가사에도 이런 성격의 전각인 산령각과 국사당이 있다. 산령각은 산신각의 다른 이름이다. 비슬산 산신을 모신 곳이니만큼 절집의 가장 뒤,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산신이라고 하여 다 같은 산신이 아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명산대천에다 신성을 부여했다. 비슬산에 대해서는 신라·고려시대 때는 불교의 신인 정성천왕이라 칭했다가, 조선시대에 와서는 유교식 표현인 정성대왕으로 칭했다. 이렇듯 유가사 산령각의 산신은 여타 다른 산신들과는 격이 다르다.    
국사당(局司堂)이라는 말은 일정 지역[국]을 도맡아 관리[사]하는 신의 집[당]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크게 보면 나라의 수호신을 모신 국사당(國師堂), 좁게 보면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성황당 등과 그 맥이 같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일정지역을 관할하고 수호하는 지역사령관에 해당하는 수호신을 불교식으로 수용한 것이 바로 국사당인 것이다. 국사당은 다른 말로 국사단·성황각·가람당이라고도 한다. 유가사 국사당 내부 제단에는 도교풍의 작은 신상과 국사신의 위패가 함께 봉안되어 있다.


5) 에필로그


우리가 산중 절집을 찾아갈 때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건물이 일주문이다. 일주문은 승과 속의 경계이자, 절집의 경계이자, 절집의 격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건물이다. 그런데 유가사 일주문은 단청이 없는 완전한 백골집의 모습을 하고 있다. 유가사의 위상에 견주어볼 때 참으로 의외다. 그건 그렇고. 필자가 유가사를 찾은 그날도 대웅전 지붕위로는 비슬산의 옥구슬이 보였다. ‘琵瑟山’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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