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창의적이고 유연한 선진국으로 가려면 어디에서부터 바뀌어야 할까? ‘퍼스트 무버 First Mover’ (피터 언더우드 지음, 황금사자 펴냄, 2012)에서 이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지금 한국의 문화 속에서 가장 시급히 각성해야 할 계층은 아랫사람이 아니라 윗사람이다. 상하관계와 권위주의는 아랫사람들이 바뀐다 해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회사에서 인사권자가 바뀌지 않으면 아랫사람들이 변화를 원해도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변화란 것은 어렵다. 본질을 혁신하려면 윗사람이 바뀌어야 하는데 한 번 ‘윗사람의 권력’을 맛본 사람들이 그것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 지도층의 대오 각성이 필요한 것이다. 이들이 먼저 군림하는 재미와 권력의 맛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야만 위에서부터 아래로 차근차근 권위주의가 무너질 수 있다.
윗사람은 군림하지 않고 아랫사람을 설득해야 한다. 리더가 한마디 했는데 부하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 뭔가 우리 조직이 잘못되고 있다고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반론이 없는 것은 조직에 다양성이 없기 때문이고, 다양성이 없는 것은 조직에 창의성이 죽었기 때문이다. 혹시 지도자 위치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가끔 부하 직원들을 모아 놓고 회의를 하면서 “아니. 왜 나만 말하고 있지.”, “의견들을 내보라니까?”라고 다그친 경험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신 차려야 한다. 왜 자기만 말하고 있다고? 장담하는데 그건 그렇게 말하는 당신 때문이다.
부하 직원이 아이디어를 들고 왔는데 리더 생각에 그 아이디어가 그다지 쓸모없었다고 치자. 리더가 부하 직원에게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일이나 열심히 해!”라고 소리치는 순간 그 조직은 죽는다. 그 아이디어가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간에 부하 직원은 그것을 생각해내느라 분명히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데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 일을 ‘쓸데없는 짓’으로 치부해버리면 그 조직에서 누가 그 ‘쓸데없는 짓’을 하려고 생각하겠는가. 만약 부하 직원의 아이디어가 지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치자. 그렇다면 깔아뭉개는 것이 아니라 설득해야 한다. 왜 그 아이디어가 잘못인지 함께 토론해야 한다. 그리고 그 토론 과정에서 혹시 리더 자신의 생각이 잘못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한다. 그래야 조직이 살고 창의력이 살아난다.
창의적 조직은 언뜻 어마어마한 것 같지만 답은 의외로 단순할 수 있다는 것이 희망을 불어넣는다.
구용회 건양사이버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