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신사가 말을 타고 가다가 병사들이 나무를 운반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상사 한 명이 구령을 붙이며 작업을 지휘하고 있었지만 워낙 무거운 나무여서 좀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신사가 상사에게 물었다. “자네는 왜 같이 일하지 않는가?” “전 졸병이 이니라 명령을 내리는 상사입니다.” 그러자 그 신사는 말에서 내려 윗도리를 벗고는 병사들 틈에 끼여 나무를 들었다. 한참 만에 나무를 목적지까지 운반한 뒤 신사는 다시 말에 올라타며 말했다.
“다음에 또 나무를 운반할 일이 일이 있거든 총사령관을 부르게.” 상사와 병사들은 그제야 그가 조지 워싱턴임을 알았다.
이 부장은 언제나 좋은 말로 직원들을 다독인다. 하지만 직원들은 그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늦게 온 직원들에게 “다음부터는 일찍 다니도록 해.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 법이야.”라고 말해 보지만 직원들의 지각은 좀처럼 고쳐지질 않는 것이다.
복사 용지만 해도 그렇다. 총무부에서는 매번 이면지를 사용할 것을 종용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종이 씀씀이가 헤프다. 이 부장은 사원들을 다루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요즘 젊은이들은 윗사람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아.’ 하지만 부하 직원들도 할 말은 있다. “부장님은 언제나 말 뿐이세요. 지각하지 말라 고 하시고는 그 다음 날 지각하는 사람은 부장님이에요. 그리고 복사 용지도 그래요. 직원들에게는 쓰지 말라 고 하면서 부장님은 이사님에게 제출하는 것이니까 새 종이를 써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회사에서 이면지를 적극적으로 권했다면 누구나 이면지를 써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지위가 높다고 새 종이를 쓰고 말단 직원들은 이면지나 쓰라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아요.”
“착한 일을 하세요.”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 등의 말을 하기는 쉽다. 하지만 이런 말은 사람들의 가슴에 얼마나 와 닿을 지는 의문이다. 모든 말들이 그렇지만 어떤 행동을 권유하는 말은 특히 진실하지 않고서는 쇠귀에 경 읽기가 되기 쉽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행동과 일치하지 않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면 잔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 부장의 경우도 자신이 먼저 일찍 출근하고 이사님이 아니라 사장님에게 보고하는 서류라도 이면지를 쓴다면 직원들은 그의 말을 따를 것이다. 자신의 말에서 정작 자신을 제외시킨다면 아무도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말은 잔소리에 불과하며 먼저 행동으로 보여 주면 말을 하기도 전에 따르게 된다. 백 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 보여 주는 것이 더 효과가 크다.
구용회 건양사이버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