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과장은 순간 아찔해졌다. 상대방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아는 척을 하는데 최 과장은 도무지 그가 누구인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고민하던 끝에 그가 바로 이번에 자재과에 새로 온 과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최 과장은 다시 한 번 고심한다. 이번에는 그의 이름이 생각나질 않는 것이다. 성이라도 기억이 나면 좋으련만 그마저도 아련하다. 결국 최 과장은 자재과장의 호칭을 피하면서 대충 대화를 얼버무리고 바쁜 척 돌아서야만 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 법한 일이다. 상대방은 자신을 잘 알고 있는데, 자신은 그 사람의 이름조차 모르겠으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만일 대화를 하던 중 자기가 이름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이 알게 된다면 당연히 그 사람은 실망감을 느끼게 된다. 자기 이름도 모르는 사람과 얘기하는 기분은 얼마나 참담할 것인가.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무척 자존심이 상한다. 더구나 자신은 상대방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데 상대는 나를 전혀 기악하지 못한다면 더욱 그렇다.
우리는 누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오래도록 인상에 남는 존재이고 싶은 것이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서 자신의 이름을 들었을 때도 왠지 우쭐해지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마치 자기가 유명인이 된 것 같다. 이것은 전화할 때도 마찬가지다. 한 번 통화한 적이 있는 거래처 사장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다가, 다시 그에게서 정화가 걸려 왓을 때 “아, 김 사장님이시죠?”라고 먼저 인사한다면 사소한 일에도 그 사람은 깊은 호감을 보이게 된다.
대통령 선거에서 루스벨트의 당선에 큰 영향을 끼쳤던 짐 팔리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것은 중학교까지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는 뒤늦게 네 개의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고, 결국엔 미국 정치계에서 중요한 위치까지 올랐다. 그는 성공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열심히 일하는 것’이라고 답하고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외우고 있는지를 말했다. 짐 팔리는 외판원 시절부터 사람들의 이름을 외우기 시작했다. 만나는 사람들의 이름과 주변 상황을 연결하여 그림을 그리듯이 외웠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언제나 이름을 부르며 유쾌하게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성공의 비결이 된 것이다.
실제로, 이름을 부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어떻게 다른지는 회사 내에서 흔히 느낄 수 있다. 최 주임은 부서에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철수 씨, 이것 총무부에 갖다 주고 오세요.” 하지만 김 주임은 다르다. “미스터 리, 이것 좀 부탁해.” 자신을 격하시키는 호칭을 들었을 때 그는 자괴감에 빠져 일할 의욕을 잃고 만다. 이런 경험은 사회 초년생 때 흔히 겪는 일이다. 상대가 나이가 어린 사람이거나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일수록 좀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이름은 곧 그 사람을 대표하는 것이므로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곧 그 사람을 기억한다는 의미이다. 사소하지만 이름 석 자를 기억함으로써 좀 더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 수 있다.
만나는 사람들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해서 불러주자. 이름을 불러 주는 것만으로 상대방은 이미 당신을 포용할 자세를 갖춘다.
구용회 건양사이버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