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요즘 사람들은 택호(宅號)를 잘 모른다. 실생활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으니 그렇다. 하지만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택호는 일상용어였다. 그 집 안주인이 못골에서 시집왔으면 ‘못골댁’, 옻골에서 왔으면 ‘옻골댁’이라 칭하는 것이 택호다. 물론 집 주인이 교장을 지내 교장댁, 군수를 지내 군수댁이라 칭하는 것도 택호다. 하지만 과거 전통마을에서 사용한 택호는 대체로 그 집 안주인 친정 고을 이름을 붙여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못골댁’이란 택호가 있다. 우리 고장인 달서구·달성군에서 ‘못골댁’이라 불리는 경우는 거의 예외 없이 그 집 안주인이 현풍읍 못골[지동]에서 시집왔다고 보면 된다. 이번에는 250년 서흥김씨 세거지이자 한훤당종택이 자리한 못골 지동못과 당산나무에 대한 이야기다.
2) 나비형국에 조성한 지동못
앞서 구지면 오설리 이야기를 할 때 풍수지리에 대해 잠깐 언급한 적이 있다. 풍수에서는 터를 볼 때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이기론과 형국론[형기론]이다. 이기론은 주로 방위를 따지고, 형국론은 주변 지형지물의 형세를 따진다. 이중 전통마을과 관련된 풍수는 대체로 형국론으로 풀이한다. 형국론이 이기론 보다는 이해가 쉽고 풍성한 스토리를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형국론에서 마을풍수를 어떻게 풀어내는지 못골을 예로 들어 한 번 알아보자.
형국론에서는 터를 살필 때 주변 지형지물을 특정 사물에 비유한다. 사람·용·뱀·조류·곤충·소·말·호랑이·거북이·어류·꽃 같은 것들이다. 못골의 경우 이 중 곤충에 해당하는 ‘나비형국’으로 풀이한다. 실제로 하늘에서 내려다본 못골은 날갯짓하는 나비를 꼭 닮았다. 마을입구에 자리한 지동못을 기준으로 뒤쪽 대니산 자락으로 좌우 두 개의 골짜기가 ‘V’ 형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동못에서 봤을 때 왼쪽이 윗마을[고래], 오른쪽이 아랫마을[가리꼬]이다. 이 두 마을이 자리한 ‘V’ 형 골짜기가 나비의 날개에 해당하고, 그 아래 두 마을이 만나는 지점인 지동못 쪽이 나비의 입에 해당한다.
대부분 나비는 꽃에서 꿀을 빨아 먹는데, 종류에 따라서는 나무 수액이나 물을 먹고 사는 나비도 있다. 어째든 나비는 대롱처럼 생긴 입을 통해 액체를 빨아먹으며 산다. 그래서 나비형국은 나비 입에 해당하는 곳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 터의 길흉이 결정된다. 못골은 그 자리에 물이 있다. 상서로운 나비의 기운이 마을을 떠나지 않고 머물게 하기 위해 나비 입 앞에 인위적으로 먹이에 해당하는 연못을 조성한 것. 그런데 어찌해서 높이도 얼마 되지 않고 골도 그리 깊지 않은 대니산[408m] 아래 지동못에는 일 년 사시사철 물이 가득한 걸까? 이유는 지동못 아래에서 지하수가 샘솟기 때문이다.
3) 수구막이 마을 숲과 할매 당산나무
우리네 전통마을을 보면 대부분 마을 입구에 마을 숲이 조성되어 있다. 흔히 정자나무라 불리는 느티나무 또는 소나무 숲이 대부분이다. 이 역시 풍수지리와 관련이 있다. 풍수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약자로 바람을 갈무리하고 물을 취한다는 뜻이다. 풍수에서는 생명에너지인 생기(生氣)를 매우 중요하게 취급한다. 그래서 생기가 모여 있으면서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터를 명당이라 하는 것이다. 생기는 바람을 만나면 흩어지고, 물을 만나면 멈추는 특성이 있다. 전통마을에 마을 숲과 마을 연못을 조성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바람에 의해 생기가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을 숲을, 생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을 연못을 팠던 것이다.
못골 지동못 상류에는 열 그루의 느티나무 고목이 못 가장자리를 따라 마을 숲을 이루고 있다. 못둑 쪽에 서서 마을을 바라보면 느티나무 숲에 가려 마을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마을 숲은 바깥의 나쁜 기운이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막고, 마을의 좋은 기운이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성한 것이다. 대체로 전통마을은 골에서 흘러내린 여러 물줄기가 마을을 지나 마을 입구에서 합수해 바깥으로 빠져나가는데 이 지점을 수구(水口)라 한다. 풍수에서는 물이 빠져나가는 수구가 마을에서 보이는 것을 흉하게 여긴다. 그래서 인위적으로 숲을 조성하거나 건축물, 구조물 등을 세워 수구가 보이지 않게 하는데 이를 ‘수구막이’라 한다.
못골 마을 숲 느티나무 중에는 마을 수호신이 깃든 당산나무가 한 그루 있다. 서낭당·할매당이라 불리는 당산나무다. 달성군 보호수로 지정된 이 나무는 수령이 약 300년인데 그 아래에 보호수 표지석과 제단석이 놓여 있다. 지금도 매년 정보름대보름 새벽에 제관으로 선출된 소수의 마을주민이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는 동제를 지내고 있다.
마을에서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일제강점기 말이었던 1945년 여름, 일경이 이 나무를 베려고 했다. 이때 동민들이 나서 “나무를 베려면 내 목부터 먼저 베야 할 것이다”며 막아 나무를 지켜냈다고 한다. 이 일이 있고 7일 후 우리나라가 광복됐다고 한다.
4) 잘려나간 할배 당산나무
전통마을에는 상당·중당·하당 혹은 할배당산·할매당산 하는 식으로 보통 두 세 곳의 당산이 있다. 지동지 상류에 있는 느티나무는 할매 당산이다. 그렇다면 할배 당산은 어디에 있을까? 본래 못골 할배 당산나무는 마을 뒷산 4부 능선에 있는 수령 300년이 넘는 모과나무였다.[주변에 그 보다 작은 모과나무 두 그루가 더 있다]. 그런데 이 할배 나무는 1992년 경 정신질환을 앓던 한 청년에 의해 잘려졌다. 주민들 말에 의하면 야밤을 틈타 주민들 모르게 몇 날 며칠에 걸쳐 혼자서 톱으로 잘랐다고 한다. 지금도 할배나무 자리에는 잘리고 남은 밑둥치가 그대로 남아 있다.
5) 에필로그
천원지방(天圓地方)이니 방지원도(方池圓島)니 하는 말이 있다. 전자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후자는 ‘네모난 연못과 둥근 섬’이란 뜻이다. 천원지방은 고대 동양의 세계관으로 동양 전 지역에서 발견되는 사상이다. 그런데 방지원도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사상이다. 못골 지동못도 방지원도형 연못이다. 사각형 연못 가운데 원형 섬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원형 섬에 배롱나무가 심겨져 있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원도에는 큰 가지를 축 늘어뜨린 수형 좋은 수양버들 한 그루가 심겨져 있었다고 한다.
수령 300년 이상 된 수형이 좋은 정자나무는 여름 철 만들어 내는 나무그늘이 크게는 100평 가까이 된다고 한다. 마을에 이런 나무가 열 그루 있으면 그 귀한 여름 철 나무그늘 1,000평을 얻는 셈이다. 옛 사람들은 나무 심는 것을 가리켜 덕을 심는 것이라고 했다는데 새삼 실감이 난다.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