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비슬산 유가사는 대웅전에 이르기 전까지 모두 네 개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제일 먼저 일주문을 통과하고, 이어 천왕문과 시방루를 통과해야 비로소 대웅전 뜰에 오를 수 있다. 범종루와 시방루는 누문으로 2층은 마루, 1층은 출입문이다. 이중 범종루는 본래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과거 지금 시방루 자리에는 취적루라는 2층 누문이 있었는데, 이 건물 2층 부분을 지금 자리로 옮긴 것이 현재 범종루다. 범종루 2층 내부에는 네 개의 물건이 허공에 매달려 있다. 불전사물(佛殿四物)이라 칭하는 범종·법고·목어·운판이다.
2) 지옥중생 구제, 범종
북·장구·징·꽹과리를 일러 ‘사물’이라 하듯, 불교사찰에도 사물이 있다. 범종·법고[북]·목어·운판이다. 이들 사물은 아침저녁 부처님께 올리는 예불에 사용되는 물건이라고 해 특별히 ‘불전사물’이라고 한다. 이중 상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범종과 법고다.
범종(梵鍾)은 쇠로 만든 종이다. 쇳소리는 멀리 가는 특징과 함께 귀신이나 정령 같은 존재와 소통이 가능한 소리라고 한다. 전통 상례에서 상여를 맬 때나 절에서 재를 지낼 때, 쇠로 만든 요령을 흔드는 것도 바로 쇳소리 때문이다. 요령에 비해 범종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물건이다. 큰 만큼 소리도 크고 웅장하다. 그래서 절에서 치는 범종소리는 지상은 물론 땅 속 깊숙한 지하세계 지옥중생에게도 전달된다. 이때 지옥에 빠져 있는 중생들은 아침저녁 들려오는 사찰 범종소리를 통해 부처님을 생각하고 위로를 받는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사찰 범종은 특징이 있다. 범종 바로 아래 바닥이 아래쪽으로 우묵하게 파여 있다는 점이다. 이는 범종소리를 더 잘 나게 하려는 장치임과 동시에 지옥중생에게까지 범종소리를 전달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한편 범종은 산중 사찰에 있어 대중들에게 시간을 알리는 역할도 한다. 시계가 없던 시절에도 그랬고, 시계가 흔한 지금도 아침저녁 울리는 범종소리는 시계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찰 범종은 새벽, 저녁 타종 때 각각 몇 번씩 타종 할까? 이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현재 행하고 있는 타종 횟수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새벽 28번 저녁 36번, 둘째는 새벽 28번 저녁 33번, 셋째는 새벽 33번, 저녁 28번이다. 28·33·36이란 숫자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대체로 28은 고천문학에서 말하는 하늘의 별자리 28수를 의미하고, 33은 석가모니부처님이 계신다는 도리천을 상징한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렇게 보면 위 타종 횟수 중 세 번째 타종횟수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새벽 33번 타종을 통해 도리천에 계신 부처님의 존엄성을 깨달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 28번 타종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온 우주로 퍼져나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3) 길짐승·들짐승 제도, 법고
법고(法鼓)는 북은 북인데 사찰에서 사용하는 북을 말한다. 북의 주재료는 나무와 소가죽이다. 북 몸통은 나무를 사용하고 양쪽 면은 각각 이음이 없는 한 장의 소가죽을 사용한다. 원칙적으로 양쪽 면에 사용하는 소가죽은 각각 암소와 수소의 가죽을 사용하는데 이는 음양의 조화를 고려한 까닭이다. 법고는 길짐승인 소가죽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가축이나 들판에 사는 들짐승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지닌 불전사물이다. 참고로 불경에는 대지가 움직여 하늘북[천고]을 스스로 울리고, 정법의 북을 쳐서 시방세계를 깨우치게 한다는 말이 있다. 또 불경에는 북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를 통해 석가모니 생존 당시에도 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법고도 범종처럼 사찰에서는 대중에게 일이 있음을 알리는 신호로써도 사용됐다. 이는 유교의 서원도 마찬가지인데 안동 도산서원 진도문에 걸려 있는 북이 좋은 예다. 또한 북과 종은 과거 군대에서도 사용된 물건이다. 진군을 알릴 때는 북을 쳤고, 후퇴를 알릴 때는 종[징]을 쳤다. 흥미로운 것은 법고를 치는 방법인데 기본적으로 한자 마음 ‘심(心)’ 자를 그리면서 친다고 한다.
4) 물에 사는 어족류 제도, 목어
목어(木魚)는 나무로 만든 물고기다. 통나무를 깎아 물고기 형상을 만들고, 아래쪽 배 부분은 속을 파내 텅 비게 만들었다. 이 텅 빈 배 부분을 두 개의 채로 두드려 소리를 낸다. 물고기 모양에서 알 수 있듯이 목어는 물속에 사는 수생동물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지닌 불전사물이다. 목어 역시 본래 용도는 신호를 위한 것이었다. 주로 대중들에게 모임을 알리는데 사용했고, 특별히 목욕탕에서 사용했다고 한다. 목욕탕은 소리울림이라는 특성상 사람들 간의 의사소통이 쉽지 않다. 그래서 물 공급 등을 알리는 신호용구로 목어가 사용됐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중국 사찰 목어는 우리나라 사찰 목어와는 달리 배 부분이 파여 있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목어는 파여 있는 빈 공간을 두드려 소리를 내는 반면, 중국 목어는 겉면을 두드려 소리를 낸다.
사찰에서는 용과 함께 물고기를 많이 만날 수 있다. 목어는 물론이요 풍경 아래에 달린 추도 물고기다. 이를 두고 물고기는 잠을 자지 않는 동물이므로 물고기처럼 용맹정진하라는 뜻에서 물고기를 사용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물고기는 눈꺼풀이 없어 눈을 감지 않을 뿐 잠은 잔다. 따라서 사찰에서 만나는 물고기는 ‘잠을 자지 않는 동물’보다는 물고기가 변해 용이 된다는 ‘어변성룡(魚變成龍)’에서 유래를 찾는 것이 옳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사찰에서 만나는 물고기[목어·풍경]는 대부분 물속이 아닌 하늘을 날고 있다. 용처럼.
5) 하늘을 나는 날짐승 제도, 운판
운판(雲版)은 테두리 부분을 구름모양으로 만든 둥근 형태의 동판으로 양쪽 면에 구름이나 해, 달을 새겨 넣기도 한다. 운판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상징하는 것처럼 날짐승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지닌 불전사물이다. 운판은 본래 중국 사찰에서 주방에 걸어 놓고 공양시간을 알리는 신호용구였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주방은 불을 직접 사용하는 곳이므로 항상 화재의 위험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비를 몰고 다니는 구름을 새긴 운판을 걸어두고 화기를 누르고자 했다. 이런 까닭에 운판을 화판(火版)이라고도 한다. ‘동 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소리’라는 말처럼 운판 소리는 맑고 청아하다.
6) 에필로그
며칠 전, 문화재청 프로그램 일환으로 유가사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다. 첫날 오후 6시, 한 스님께서 범종루에 올랐다. 저녁 타종시간이었다. 타종과 함께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툭툭” 우산을 때리는 빗소리와 함께 범종소리가 유가사 골짜기로 퍼져나갔다. ‘낮에 열심히 돌아다녔던 산중 식구는 이제 그만 잠자리로 돌아가고, 낮에 쉬었던 이들은 이제 그만 잠에서 깨어나라’ 그러고 보니 범종은 지옥중생뿐만이 아니라 길짐승·들짐승·어류·조류 등 모든 산중 식구에게 알람 역할을 한다. 그래서 범종이 불전사물 중 최고인가 보다.
[참고문헌 : 사찰의 상징체계 상, 자현스님]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