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며칠 전 달성군 다사읍 죽곡리 모암봉(196m)에 올랐다. 모암봉 정상 부근에 있다는 윷판형 암각화를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암각화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모암봉으로 이어지는 서로 다른 두 등산로 바닥 암석에 떡하니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산을 오르내리는 누구라도 쉽게 보라는 듯, 혹은 보지 않고는 이 길을 지나갈 수 없다는 듯이. 그런데 이 암각화의 정체가 오리무중이다. 누구는 선사시대 유적이라 하고, 누구는 그렇게 오래된 것은 아니라고도 한다. 이번에는 이 정체불명의 ‘죽곡리 모암봉 윷판형 암각화’에 대한 이야기다.
2) 성혈과 암각화
성혈(性穴·星穴)이란 게 있다. 바위에 동전크기만한 인위적인 홈이 파인 것을 말한다. 다른 말로는 바위구멍·알구멍·알바위·홈구멍·굼이라고도 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성혈은 선사시대 유적으로 대체로 청동기시대쯤이라고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선사시대인들은 왜 바위에다 홈을 팠을까? 요즘처럼 좋은 공구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 홈을 파기 위해서는 많은 공력이 필요했을 것인데…
성혈은 대부분 고인돌 덮개석, 들판 너럭바위, 하천이 잘 내려다보이는 산정상부 암석지대 등에서 발견된다. 이처럼 어느 정도 특정화된 지역의 바위에서 발견된다는 점 때문에 성혈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그래서일까. 최근 학계는 물론 민간에서도 성혈을 연구하는 단체나 연구자가 많아졌다. 현재까지 나온 성혈에 대한 연구결과물을 보면 고고학·민속학·고천문학 등 접근 분야에 따라 다양한 설이 있다. 풍요와 다산을 상징한다는 설[性穴], 별자리를 상징한다는 설[星穴] 등이 대표적이다.
청동기시대가 되자 인류는 비로소 농경생활을 바탕으로 정착·집단생활을 시작했다. 따라서 청동기시대 대표 유적 중 하나인 성혈은 기본적으로 정착·집단생활에 따른 농경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는 들판과 하천 그리고 풍부한 노동력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거기에 하나를 더한다면 춘·하·추·동 사계절의 변화를 알아야 한다는 것. 그래야 언제 씨를 뿌리고, 언제쯤이면 큰 비가 내리고, 언제 곡식을 수확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선사시대인들은 때를 알기 위해 하늘을 연구했다. 그 결과 매일 밤 일정한 시간에 나타나는 특정 별자리 위치가 계절의 변화와 관련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를 바위에다가 단순화·상징화·도형화 한 것이 바로 별자리형 성혈이 된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북두칠성을 그대로 본 딴 북두칠성 성혈이다. 봄철에는 해가 지고 막 하늘에 나타난 북두칠성의 손잡이가 동쪽을 향하고, 가을에는 서쪽을 향한다는 것을 선사시대인들이 알았던 것이다. 이를 두고 누구는 이렇게 설명하기도 한다. “선사시대인은 밤이 되면 할 일이 없다. 밤하늘을 수도 없이 쳐다봤을 것이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자신도 아들도 손자도…. 그들이 밤하늘의 별자리를 읽는 수준은 어쩌면 지금보다 더 나았을 수도 있다”
3) 윷판형 암각화
암각화는 바위표면에 어떠한 형상을 새긴 것 중, 특별히 문자 출현 이전인 선사시대에 새겨진 것을 말한다. 성혈처럼 단순한 홈 형태도 있고, 사람의 얼굴이나 칼 같은 것을 묘사한 것도 있다. 그 중에는 윷판을 쏙 빼닮은 것도 있는데 이를 윷판형 암각화라 한다. 현재까지 윷판형 암각화는 전국적으로 대략 85곳 281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강이나 하천이 잘 내려다보이는 산정상부 암석지대에서 주로 발견된다는 점, 모양이 지금의 윷판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 세계를 통틀어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만 발견된다는 점 등이다.
윷판형 암각화가 정말 선사시대인의 작품이라면 신기한 일이다. 문자는 고사하고 서로 간에 이동도 쉽지 않았던 시대에 어떻게 한반도 전역에 걸쳐, 그것도 비슷한 지형에서 비슷한 모양의 암각화가 나타날 수 있었을까? 이를 두고 관련 연구자들은 여러 설을 제시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북극성·북두칠성·별자리 28수’의 운행을 도형화 한 것이라는 설이다. 윷판과 윷판형 암각화에 나타나는 점은 둘 다 29개로 같다. 가운데 있는 중심점이 북극성이고, 이 점을 기준으로 십자형과 그 바깥으로 원을 그리며 나타나는 28개의 점이 북두칠성 혹은 별자리 28수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민속신앙에 있어 북두칠성은 최고위급 신으로 못하는 것이 없는 그야말로 신통방통한 존재다. 생명 잉태, 무사·무병·장수, 죽음 이후 세계를 관장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전적으로 북두칠성에 의지했다. 우리 말에 죽음을 가리켜 ‘칠성판 지고 간다’는 표현이 있다. 실제로 관 바닥에 북두칠성을 새긴 칠성판을 까는 문화는 세계에서 우리민족 밖에 없다.
4) 모암봉 2개의 윷판형 암각화
모암봉 정상에는 강정마을과 전망대로 내려가는 두 개의 등산로가 있다. 이 두 등산로 8부 능선쯤에 각각 한 개씩의 윷판형 암각화가 있다. 강정마을 쪽 암각화는 지름이 약 30cm, 전망대 쪽 암각화는 약 40cm 쯤 되는데, 후자가 훨씬 더 윷판 모양에 가깝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강정마을 쪽 암각화 주변 바닥 암석에 수십 개가 넘는 큰 성혈이 마치 밤하늘 별자리처럼 새겨져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두고 성혈이 아닌 근래에 판 것으로 보는 이도 있다] 또 모암봉 정상부에도 성혈바위가 여럿 흩어져 있는데, 자세히 보면 북두칠성을 새긴 성혈바위도 있다.
5) 에필로그
저명한 미국 민속학자 스튜어트 컬린는 펜실베니아대학 고고학박물관장으로 재직 중이던 1895년 『한국의 놀이』란 책을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한국의 윷놀이는 전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놀이의 원형이다”, “고대점술에 기원을 둔 윷놀이는 우주적이고 종교적인 철학도 담고 있다”, “한국의 윷놀이는 판 위에서 주사위를 가지고 노는 모든 놀이의 원형이다”며 극찬했다. 한편 최근 중국학자들은 국내성 ‘윷놀이판 바위그림’을 두고 자신들은 처음 보는 매우 뛰어난 우주론적 도형으로 하늘에서 내린 ‘천서(天書)’라고까지 극찬했다. 우리 민족에게는 한 없이 친숙한 윷판이 윷놀이를 모르는 중국인들에게는 하늘이 내린 천서로 보였던 모양이다.
다사지역 향토문화를 연구하고 있는 다사향토문화연구소 최원관 소장은 죽곡리 윷판형 암각화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소 먹이러 취모산[모암봉]에 올라갔다가 바위에 새겨진 윷판에서 놀이를 했던 기억이 나요. 어렸을 때부터 봐 왔던 것이라 그렇게 오래된 유적이라는 생각은 못해 봤어요. 전문가들이 나서 정체를 좀 밝혀주면 좋겠어요”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