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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168. 와룡산은 현룡일까? 항룡일까?
  • 푸른신문
  • 등록 2021-05-20 13: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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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우리 고장에는 달서구·달성군·서구·북구 네 지역에 접해 있는 산이 있다. 흔히 성서 와룡산(臥龍山)이라 부르는 산이다. 대구 중심부를 기준으로 성서 쪽에 있어 흔히 성서 와룡산이라 칭한다. 하지만 산의 북동쪽[북구], 동쪽[서구], 남·서쪽[달서구] 끝자락 일부만 제외하면 산 대부분이 달성군 다사읍 방천리에 속해 있다. 이번에는 말발굽을 닮은 특이한 모양의 산, 대구를 등진 역산, 슬픈 용 전설 등을 간직한 와룡산에 대한 이야기다.

2) 잠룡·현룡·비룡·항룡
용 이야기가 나오면 필자가 자주 언급하는 용어가 있다. 명나라 사람 호승지가 쓴 「진주선」에 나오는 ‘용생구자설’이다. 이는 용왕의 아홉 아들 용에 대한 이야기로 재미는 물론, 동양문화 속에 등장하는 용을 이해하는데 매우 유익한 텍스트다. 그런데 용생구자설만큼 용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텍스트가 또 있다. 『주역』에 나오는 잠룡·현룡·비룡·항룡 4룡이 그것이다.
『주역』에서는 걸출한 인물의 생·장·소·멸 과정을 용의 성장에 비유해 설명하고 있다. 제일 먼저 잠룡(潛龍)이 등장한다. 물속에 잠겨 있는 용, 이른바 때를 기다리며 내공을 닦고 있는 용이다. 다음은 현룡(見龍)이다. 뭍으로 나와 자신을 알아봐 줄 이를 기다리는 용이다. 현룡 다음은 비룡(飛龍)이다. 비로소 자신을 알아주는 때와 인물을 만나 하늘을 오르는 용이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용은 항룡(亢龍)이다. 항룡은 하늘 높이 너무 과하게 날아오른 용이다. 승천이 과해 이제는 떨어질 날만 기다리는 과유불급의 용,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이카루스’ 이야기처럼 말이다.

미궁에 갇힌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루스를 탈출시키기로 했다. 손재주가 좋은 다이달로스는 새 깃털을 모아 밀랍으로 붙여 만든 날개를 이카루스에 주었다. 다이달로스는 아들에게 당부했다. “너무 높이 날면 태양열에 의해 밀납이 녹고, 너무 낮게 날면 바다의 수분으로 날개가 무거워지니 항상 하늘과 바다의 중간으로만 날아야 한다” 하지만 탈출에 성공한 이카루스는 창공을 나는 기쁨에 도취돼 아버지의 당부를 잊고 말았다. 너무 높은 곳까지 날아오른 이카루스는 결국 날개의 밀랍이 녹아내려, 바다에 추락해 죽었다. 이카루스가 떨어져 죽은 바다가 ‘이카리아해’다.

대구 위생매립장 조성 전 와룡산
대구 위생매립장 조성 후 와룡산

3) 와룡산 전설
와룡산에는 여러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옥연(玉淵)’ 전설이다. 『대구읍지』 「산천」 조에 “와룡산은 부 서쪽 약 10리 거리에 있다. 산 아래에 옥연이라는 연못이 있다. 옥연에서 용이 나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산 이름을 와룡산이라 했다”고 소개되어 있다. 이 전설을 좀 더 발전시킨 또 다른 전설이 있다.

옛날 지금의 와룡산 기슭에 옥연이라는 못이 있었다. 옥연에는 오랜 세월 동안 마을 수호신 역할을 하며 하늘로 날아오를 날만 기다리던 용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비로소 옥연의 용이 승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모습을 본 마을 아낙네들이 놀라 비명을 지른 탓에 용은 더 이상 승천하지 못하고 땅에 내려앉아 산이 되었다. 사람들은 승천하던 용이 도로 땅에 내려와 누웠다 해서 와룡산이라 불렀다.

한편 ‘용두봉 묘’ 전설도 있다. 와룡산 용머리 정상에 묘를 쓰면 그 후손은 발복해 큰 부자가 되지만, 마을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 등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난다는 전설이다.

일제강점기 때 있었던 일이다. 와룡산 일대에 큰 가뭄이 든 적이 있었다. 주민들은 누군가가 용두봉에 묘를 썼을 것이라 생각하고 묘를 찾기 위해 용두봉에 올랐다. 정상 부근에서 몰래 쓴 묘를 찾아낸 주민들은 두 길 깊이에 묻혀 있는 송장을 파내 불 태웠다. 그러자 마른하늘에 갑자기 비구름이 몰려들고 천둥·번개와 함께 비가 쏟아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와룡산에는 장수바위·까들락바위·선풍바위·원한바위·비룡바위 등에 얽힌 전설 등이 있으며, 용두봉 정상에는 장군정이라 불리는 샘에 얽힌 전설도 전한다. 하지만 와룡산 안쪽 방천리에 대구시위생매립장을 조성하면서 장수바위를 비롯한 전설이 얽힌 유적 대부분이 사라졌다.
한편 와룡산이 들으면 섭섭해 할 이야기도 있다. 와룡산을 ‘대구의 역산(逆山)’이라 부르는 예다. 이는 와룡산 용두봉과 용미봉이 대구를 등진 채 임금이 있는 수도 한양 땅을 향해 있어 만들어진 이야기다. 이쯤 되니 문득 문경 주흘산 전설이 떠오른다.

조선이 개국될 때 태조가 전국의 명산들에게 명을 내렸다. 조선의 진산을 뽑으려 하니 모두 한양으로 올라오라고. 이때 임금의 명을 늦게 들은 주흘산이 한양으로 가는 도중, 삼각산이 조선의 진산으로 뽑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흘산은 그 길로 발길을 돌려 지금의 자리에 눌러앉았다. 한양을 등진 체 말이다. 사람들은 한양을 등진 주흘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다. 하지만 주흘산은 한양을 등진 이유가 있었다. 남쪽에서 침범하는 왜적으로부터 임금이 계신 한양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4) 북쪽으로 터진 말발굽 모양
와룡산은 모양이 참 특이하다. 북쪽으로 터진 ‘U’자형 말발굽 모양인데 인터넷 지도검색을 해보면 정말 신기할 정도로 말발굽과 똑같이 생겼다. 어떻게 해서 이런 특이한 산형을 지니게 됐을까? 지리학에서는 와룡산을 ‘잔구’와 ‘열접촉 변질 경화대’란 용어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를 가급적 쉬운 용어로 풀어보면 이렇다.

와룡산은 산을 이루고 있는 암석의 종류에 따라 침식에 약한 부분은 깎여나가고 강한 부분만 남아 산이 된 잔구다. 또 와룡산이 ‘U’자형 말발굽 모양 분지형을 보이는 것은 땅 속 마그마가 산 중앙부로 뚫고 올라와 굳은 화강암 때문이다. 중앙부로 올라온 뜨거운 마그마 열에 의해 주변 지역 암석은 침식에 매우 강한 성질의 변성암으로 바뀌고, 마그마는 굳어 침식에 약한 화강함이 된다. 이후 오랜 세월에 걸친 침식·풍화작용으로 침식에 약한 중앙부 화강암은 깎여나가고, 화강암을 둘러싼 침식에 강한 변성암만 남아 분지를 만들었다. 북쪽으로 터진 형태가 된 것은 금호강이 산 북쪽지역을 침식했기 때문이다.

5) 에필로그
‘대구의 역산(?)’이란 억울한 오명을 쓰고 있는 와룡산. 하지만 대구를 등진 체 앉아 있는 와룡산은 대구로서는 고맙기 그지없는 산이다. 현재 와룡산 안쪽 분지에는 400년 내력의 문화류씨 세거지가 옮겨간 자리에 대구위생매립장[쓰레기매립장]이 조성돼 있다. 북쪽만 제외하고 동·서·남 세 방향이 ‘U’자형으로 둘러싸인 와룡산은 겨울철이 되면 그 진면목을 알 수 있다. 와룡산이 겨울철 대구 방향으로 불어오는 찬 북서계절풍을 막아주고, 매립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대기성분들이 대구로 곧장 넘어오지 않게 일정부분 붙들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과거 임금이 계시던 북쪽을 향해 앉은 와룡산은 때를 기다리는 현룡일까? 아니면 추락한 항룡일까?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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