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 인근에 위치한 푸에르토리코의 국립미술관 입구에 ‘노인과 여인’이란 그림이 걸려있다. 각 나라의 국립박물관 입구에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화가의 그림을 전시하는 것이 관례인데 반해 그 그림은 죄수복을 입은 한 노인이 젊은 여인의 젖을 물고 있고 그 여인도 반항하는 표정이 없는 다소 난잡하기 이를데 없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본 많은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이런 그림이 왜 하필 이곳에 있는 거야”하며 화를 내기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 작품의 배경을 알고 나면 그 의문이 풀린다고 한다.
그림의 노인은 푸에르토리코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운 투사 사이몬이고 젊은 여인은 그의 딸 페로이다. 당시 독재 정권은 투사인 사이몬을 감옥에 가두고 음식을 먹이지 않는 가혹한 형벌을 내린다. 그래서 노인은 감옥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던 차에 해산한지 얼마 안된 그의 딸 페로가 아버지를 면회 갔다가 처참하게 굶주려 있는 아버지 모습을 보고 그녀의 젖을 물린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모르는 사람은 처음에는 불륜, 저질 등의 생각으로 불쾌해 하다 배경을 알고나서는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이처럼 자기 자식에게 먹여야 할 젖을 굶어 죽어가는 아버지의 입에 물리는 효성은 우리를 감동케 한다.
정호승 작가는 그가 쓴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란 산문집에서 가족에 대한 아주 슬픈 사연을 들려주고 있다. 어느 해 여름 서해에서 있었던 일인데, 모처럼 가족들끼리 보트를 타고 가까운 섬으로 나들이를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보트가 뒤집혀 일가족 다섯 명이 그대로 바다에 빠진다. 다행히 구명조끼를 입은 터라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며 바다에 떠 있었지만 오랜 시간 구조대는 오지 않았다. 아빠는 가족들에게 “구조대가 곧 오니 조금만 참아라” 라고 희망을 심어 주었지만 아이들은 하나 둘 바다 속으로 들어갔고 급기야 아이들의 아빠마저도 “여보, 미안해”하는 한마디 말만 남긴 채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이튿날 아침에 나타난 구조대에 의해 아이 엄마는 혼자 살아났지만, 그녀는 이미 사랑하는 가족들을 다 잃고 난 뒤였다고 한다. 바다에 둥둥 떠서 아이들과 남편이 차례차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던 그녀의 심정이 얼마나 비참했을 것인가.
그는 이러한 사례를 설명하면서 아침에 현관에서 배웅한 남편을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면, 아침에 현관에서 헤어진 아내를, 아이들을 다시는 보지 못 한다면 서로 아웅다웅하면서 살지는 않을 것이라고 썼다. 그리고 매일 가족을 생각할 때 “오늘이 지나면 다시 못 볼 사람처럼 가족을 대하라”고 했다.
가족끼리 살다보면 어느 날은 내 목숨마저 바칠 만큼 사랑스러울 때도 있지만 자녀가 학업을 게을리 하거나 가족과 의견차이가 있을 때 조금 못마땅한 날도 있게 마련이다. 이럴 때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한다면 못마땅하다가도 금방 사랑스럽게 생각되어질 것이다.
구용회 건양사이버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