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폭이나 ‘미투’ 등의 문제로 논란이 많다. 이와 관련하여 처신을 잘못 하여 낭패를 본 경우도 많지만 이에 대한 절제를 잘하여 성공한 사례도 있다. 통문관지(通文館志)에 전해지고 있는 조선 선조 때 역관(譯官) 홍순언(洪純彦)이 그 좋은 본보기다.
그는 북경에 통역관으로 갔다가 하루는 술집에 들어갔는데 눈에 띄는 여자가 있어 하룻밤을 함께 하려고 했다. 하지만 방에 들어온 그 여인이 소복을 입고 있어 자초지종을 물으니 부친이 지병으로 갑자기 사망하여 장례비용을 마련하려고 술집에 나오게 되었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홍순언은 그 여인이 불쌍하고 지극한 효심에 감복하여 자신의 노자돈 뿐만 아니라 공금까지 합쳐 300금을 여자에게 주었다. 당시 300금은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1억 원 정도 된다고 하니 꽤나 많은 돈을 준 것이다. 그러고도 홍순언은 그 여인을 손끝하나 건드리지 않고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 여인에게 호의를 베푼 대가로 홍순언은 귀국하여 공금횡령죄로 감옥에 가게 되었다.
몇 년의 세월이 흘러 홍순언은 동료 역관들이 돈을 거둬 공금을 갚아주어 다시 역관 신분으로 명나라에 가게 되었다. 그의 임무는 명나라 법전에 이성계의 족보가 엉뚱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을 고치라는 엄명이었다. 조선에서는 이것을 고치기 위해 이미 여러 차례 사신을 보냈으나 명나라는 200년간 시간만 질질 끌고 있었던 차였다. 홍순언 일행이 자금성 입구인 조양문에 들어서자 전혀 예기치 않게 성문 밖에서 홍순언 일행을 환영하는 비단 장막이 구름처럼 걸려 있었다. 명나라 예부시랑, 즉 지금의 외교부 차관급인 석성이 부인과 함께 홍순언을 맞이하러 나왔던 것이다. 알고 보니 그의 부인이 바로 그때 기생집에서 봤던 여인이었다. 원래 명문가의 딸이었던 그 여인은 효성심이 알려지면서 외교부 차관의 부인이 된 것이다. 결국 홍순언은 보은(報恩)이라는 글자를 수놓은 비단 100필을 선물로 받았고, 석성의 노력으로 200년 동안 끌었던 잘못된 족보가 올바로 수정되었던 것이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중인 신분이었던 홍순언은 파격적으로 양반신분인 당릉군(唐陵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이와는 반대로 처신을 잘못하여 공인으로서 국사(國事)를 망치고, 개인적으로도 낭패를 본 일도 있었다. 2011년 3월, 소위 ‘상하이 스캔들’이 발생했다. ‘상하이 스캔들’은 중국 상하이 총영사관 영사들과 33세 중국 여성 덩신밍(鄧新明)의 불륜파문에 국가 기밀유출 의혹이 더해진 사건이다. 법무부 출신의 H영사, 지식경제부 출신의 K영사, 외교통상부 소속의 P영사가 중국인 여성 덩씨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외교관련 주요 비밀자료를 유출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외교 위신은 크게 추락하였고, 엘리트 코스를 밟던 3명의 상하이 총영사관 영사들은 순간의 잘못으로 모든 것을 잃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러한 사안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또한 사회 구성원 모두의 합리적인 사고와 행동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구용회 건양사이버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