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삼동에 가면 유난히 촌스러운(?), 하지만 90년대에는 최신 트렌드였을 법한 간판 하나가 눈에 띈다. 간판만 봐도 오래된 식당이구나 느껴질 만큼. 23년간 변함없이 감삼동에서 장사하고 있는 운문식당이다. 식당 앞에 가면 점포는 두 칸인데 거기다 간판도 두 개다. 다 운문식당이니 고민하지 말고 두 개의 출입구 중 하나를 열고 들어가면 여사장님이 계신다.
가게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요즘은 보기 힘든 정겨운 옛날 소주병들이다. 23년 세월을 증명하는 물건들이다. 이름만 말하면 다 아는 대구 지역소주의 됫병, 4홉들이 같은 추억의 물건들을 볼 수 있다.
몇 개 안되는 테이블의 작은 가게를 둘러보다보면 또 놀랄 일이 있다. 삼겹살 1인분(150g) 7,000원!!!! 요즘 세상에 말도 안 되는 가격이다. 그리고 메뉴판을 쭉 보다보면 맛집이 다 그렇듯 메뉴가 간단하다. 닭발, 돼지껍데기, 돼지찌개, 두루치기. 찌개류. 이게 끝이다. 신선한 국산 재료에 사장님의 손맛을 더해 만들어진 음식, 그 기본 원칙으로 23년이라는 긴 시간을 버텼고 거기에 단골손님이 식당 유지의 비결이라 할 만큼 단골이 많다.
사실은 이집 롱런의 숨은 비결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메뉴에도 없는 반찬 “김치”다. 김치 먹으려고 고기 먹는다고 말하는 단골이 있을 정도로 김치 맛이 대단하다. 그래서 이 가게에서는 절대로, 절대로 삼겹살을 먹을 때 김치를 구워 먹으면 안 된다. 그래서 아예 이걸 벽에 써서 붙여 놓았지만 그래도 김치를 불판에 올리는 손님들을 볼 때면 어디선가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가 있다.
“그 아까운 김치를 뭐할라꼬 구워 먹노. 김치는 생으로 먹어야 제 맛이지.” 라고 장난삼아 욕을 하며 혼내신다. 사실 이 사장님은 유튜브에서 “감삼동 삼겹살집 욕쟁이할머니” 로 유명하다. 사장님과 잘 아는 낯익은 단골들에게는 구수한 욕을 섞어가며 대화를 하신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집에 단골이 많은 비결은 사장님이 자랑하시던 “김치”가 아닌 아마 “사장님”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유튜브에 맛집으로 소개된 후에는 영상을 보고 찾아오는 젊은 손님이 많아졌다고 한다.
70대의 고령임에도 그것도 혼자서 가게를 운영하시지만 힘들어도 단골들이 오면 서비스로 특수부위 고기를 슬쩍 내민다. 사장님은 이 나이에도 장사를 계속하는 건 아직도 자신을 찾아주는 단골손님 때문이라고 한다. 다들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며 의리있게 변함없이 오랜 시간 찾아주는 단골을 챙기는 게 사장님의 인생 철학이고 그것이 단골을 유지하는 가장 큰 비결이 아닐까 싶다.
오늘은 퇴근하는 길에 운문식당의 23년 세월만큼 오래된 내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고기 말고 술 한 잔 할까 물어봐야겠다.
김경민 기자
☞ 운문식당: 감삼동 175-2
전화: (053) 554-46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