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枯木),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裸木)이었다. [박완서의 소설 『나목』 중에서]
며칠 전 유가읍 한정리에 있는 삼정자 느티나무를 찾아갔다. 한 겨울에 나무를, 그것도 잎이 다 떨어진 느티나무를 왜 보러 갔느냐고 의아해 할 수 있다. 그렇다. 분명 이상한 일이지만 나무를 보러 간 게 맞다. 좀 더 정확히는 ‘나목’을 보러 간 것. 고목은 말라죽은 나무요, 나목은 살아 있으되 잎이 다 떨어져 가지만 남은 나무다. 얼핏 보면 같아 보이지만 이 둘은 서로 너무나 다르다. 특히 나이 많은 고목(古木)은 한 여름 녹음과 가을 단풍만큼이나 겨울철 나목도 볼만하다. ‘나목의 미(美)’라고나 할까! 이번에는 유가읍 한정리 삼정자 나무와 미륵굼에 대한 이야기다.
2) 찬물이 나는 샘과 정자가 있어
한정리는 달성군 유가읍 남쪽 지역으로 청도·창녕과 접경을 이루고 있다. 과거에는 현풍군 말역면이었다가, 이후 한정동·원산동·안현동 등을 합쳐 지금은 유가읍 한정리가 됐다. 한정은 찬 샘과 정자가 있어 ‘한정(寒亭)’이라고도 하고, 샘물이 차서 ‘한정[寒井·찬새미]’이라고도 한다. 한정리 자연마을로는 내한정·질매재·심피·원사이 등이 있다. 한정1리에 해당하는 내한정은 안쪽에 있다 해서 내(內)한정, 마을 형국이 기러기가 내려앉는 것 같다 해서 내안(來雁)정이라고도 한다. 질매재는 마을 형국이 마치 말안장을 닮았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질매는 안장과 비슷한 물건인 ‘길마’의 지역 사투리다. 그래서 질매재를 다른 말로 ‘안장 안, 고개 현’ 안현동이라고도 하는데 지금의 한정3리다. 심피는 폐교된 한정초등분교 일대 마을로 들 가운데 새로 생긴 마을이란 뜻에서 신평(新坪)이라고도 한다. 심피라는 말은 힘없고 못사는 사람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부터 ‘심[힘]’을 펴고 살 수 있었다 해서 붙은 이름이란다. 수청(水淸)은 심피 바로 옆 마을이다. 한강 정구 선생이 창녕군수로 있을 때 이곳에서 잠시 쉬면서 물이 맑아 수청이라 이름 했다고 전한다. 한정2리인 원사이[원산·元山]는 마을 뒷산이 원(元) 자를 닮았다 해서, 혹은 이 일대에서 으뜸가는 마을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다.
3) 삼거리에 자리한 삼정자
한정리 중앙부에 자리한 신평에 한정1·2·3리로 갈라지는 삼거리 갈림길이 있다. 이 삼거리 한 편에 거대한 느티나무 세 그루가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세 그루 정자나무’라는 뜻에서 삼정자(三亭子)라 부르는데, 조금 떨어져서 보면 세 그루 느티나무가 마치 한 그루처럼 보인다. 삼정자는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 한정리에 살았던 곽여량[1602~1680]이라는 인물이 심은 것으로 전한다. 그는 임란의병장 망우당 곽재우의 종손자(從孫子)이자, 곽재우의 아버지 황해도 관찰사 정암 곽월의 증손자다. ‘곽여량 식수설’에 근거하면 삼정자 수령은 대략 400~500년 정도 되는 셈이다. 참고로 달성군에서 설치한 보호수 안내판에는 삼정자 수령을 300~500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전통마을에는 예외 없이 마을 수호신이 깃든 당산나무가 있다. 삼정자 역시 한정리 당산나무다. 본래 한정리에는 세 곳의 당산이 있었다. 한정2리 원산마을 뒷산에 있는 산신당, 한정2리 마을회관 옆에 있는 미륵굼 그리고 삼정자다. 예전에는 정월 보름날 산신당, 미륵굼, 삼정자 순으로 동제를 지냈지만, 지금은 삼정자에서만 지내고 있다. 수 백 년 내력을 지닌 한정리 당산나무답게 삼정자와 미륵굼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하나 전한다.
옛날, 어느 해 동제를 지내고 난 뒤 마을 별로 힘겨루기를 했다. 삼정자 당산 쪽에서는 힘센 장사를 내보냈고, 미륵 당산 쪽에서는 힘과 재주가 모자라는 바보를 내보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미륵당산 바보가 삼정자 장사를 이겼다. 이때부터 미륵당산에 깃든 신을 마을사람들이 더욱 지극정성 모시게 됐다. 지금도 미륵당산에는 당산나무인 느티나무와 미륵불이 남아 있는데 마을사람들은 이를 ‘미륵굼’이라 부른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 경찰이 삼정자를 벌목하려다가 포기한 일이 있었다. 삼정자를 벌목하려하자 갑자기 마을에 여러 건의 원인모를 화재가 발생했던 것. 마을주민들은 이를 삼정자 당산나무 신의 경고로 받아들였다. 주민들은 벌목 계획에 강력하게 항의했고, 결국 삼정자는 벌목을 피할 수 있었다. 우리 고장에는 이와 비슷한 사례의 당산나무가 많다. 당산나무에 정말 신이 깃든 것일까!
4) 한정리 원산마을 미륵굼
한정2리 마을회관에서 동쪽으로 100m 쯤 떨어진 밭 가운데 느티나무 한 그루와 석불 한 기가 서 있다. 한정리 미륵굼이다. 미륵굼 당산나무는 높이 약 8m 느티나무로 수령은 대략 100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나무 바로 앞에 기이(?)하게 생긴 석불이 있다. 마을에서는 이 석불을 ‘미륵불’이라 부른다. 높이 240cm, 폭 61cm인 미륵불은 현재 보존 상태가 좋지 않다. 여러 갈래로 조각난 미륵불을 철사로 묶어 놓은 상태다. 그런데 미륵불 모습이 좀 신기하다. 무심코 보면 그냥 돌기둥 같고, 관심을 갖고 보면 남근석을 닮았다. 그런데 위치를 잘 잡아 제대로 살펴보면 신기하게도 정말 미륵불이 보인다. 아래쪽 가사 주름과 훼손된 미륵불 신체 뒤로 광배가 또렷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희미해서 그렇지 눈·코·입은 물론 위쪽으로 세운 왼 손 검지도 보인다. 미륵불이 본래부터 이곳에 있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옮겨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오랜 세월 한정리 사람들과 기쁨과 애환을 함께 해온 유정(有情)인 것만은 분명하다. 원산마을은 정남향에 배산임수를 제대로 갖춘 마을이다. 한 겨울철에도 바람이 적고 해가 길어 따뜻하다. 지금처럼 마을이 들어서기 전 아주 먼 옛날, 이곳에 사찰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5) 에필로그
박완서의 『나목』은 우리나라 대표 서양화가인 박수근의 삶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 이경은 젊은 시절 옥희도라는 유부남 화가를 사랑했지만, 다른 이와 결혼해 가정을 꾸린다. 세월이 흐른 후 옥희도의 유작전(遺作展)을 찾아간 이경. 그곳에서 이경은 젊은 시절 옥희도의 집에서 본 작품을 다시 만나게 되고, ‘고목’인줄 알았던 작품 속 나무가 ‘나목’임을 알게 된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김장철 소스리 바람에 떠는 나목,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만 그의 수심엔 봄의 향기가 애달도록 절실하다. 그러나 보채지 않고 늠름하게, 여러 가지[枝]들이 빈틈없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채 서 있는 나무, 그 옆을 지나는 춥디 추운 김장철 여인들.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봄에의 믿음-나목을 저리도 의연(毅然)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
송은석(대구문화관광해설사) e-mail: 316917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