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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150. 설화리 상여소리[생이소리]
  • 푸른신문
  • 등록 2021-01-14 15: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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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지난주에 현존하는 대구 유일의 상엿집인 달서구 도원동 수밭골 상엿집에 대해 알아보았다. 우리 고장에는 상여 관련한 중요한 유물과 전통문화가 또 있다. 바로 달성군 설화리 상여와 상여소리[생이소리]다. 설화리 상여소리는 근래 세상에 많이 알려져 나름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번에는 상여 멜 일이 사라진 지금까지도 옛 상여와 상여소리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달성군 설화리에 대한 이야기다.

2) 이제 가면 언제 오나
흔히 상여소리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가사가 있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또는 ‘북망산천 멀다더니 내 집 앞이 북망일세’ 등이다. 상여소리는 상두꾼[상여꾼]들이 상여를 들고 장지로 가는 도중에 부르는 소리다. 다른 말로는 ‘수레 끌 만’, ‘노래 가’ 만가(輓歌)라고도 하고 향도가·향두가라고도 한다. 상여의 선두에 선 선소리꾼[앞소리꾼·요령잡이]이 요령을 흔들며 선창으로 ‘메기는 소리’를 하면, 상여를 매고 있는 상두꾼들이 ‘받는 소리’를 하는 식이다. 상여소리는 지방마다 차이는 있지만 의외로 비슷한 부분도 많다. 상여소리 가사는 떠나가는 망자의 혼령을 달래고, 남아 있는 자들을 위로하는 내용인데, 특이한 점은 유·불·선 사상이 한데 섞여 나타난다는 점이다.
상여소리는 상여가 나가는 출상 전날 밤부터 시작된다. 이를 ‘상여놀이·장맞이·말메이는 소리’라고 한다. 슬픔에 잠겨 있는 유족을 위로하고, 다음 날 본 행사에 앞서 예행연습을 한 번 하는 셈이다.
상여소리는 ‘해로가’와 ‘호리곡’이란 노래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2천 2백 년 전, 초한지의 주인공인 한 고조 유방에게 항복하기를 거부한 제나라 전횡. 그가 자결하자 부하 500명도 따라 자결했다. 이를 지켜 본 전횡의 부하들이 슬픔을 노래로 만들어 부른 것이 해로가와 호리곡이다. 한나라 무제 때 이연년이 이를 다시 곡으로 만들었으니, 해로가는 왕공이나 귀인, 호리곡은 사대부나 서인 장례 때 불렸다.

○ 해로가 : 부추에 내려앉은 아침이슬은 어찌 그리 쉽게 마르는가. 이슬은 말라도 내일 아침 다시 내리지만, 사람은 죽어 한 번 가면 언제 돌아오나
○ 호리곡 : 호리는 누구의 집터인가. 현명함과 우둔함을 가리지 않고 혼백을 거두어 모으네. 귀신은 어찌 그리 재촉하는가. 사람 목숨은 잠시도 머뭇거리지 못하네.

3) 설화리 상여소리
정말 놀라운 일이다. 대구광역시에 아직 상여소리가 남아 있다니. 설화리 상여소리는 그 역사가 약 120년이 넘는다고 한다. 선소리꾼 계보도 현재까지 4대째 이어 오고 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상여는 1950년 쯤 제작된 것이라 한다.
설화리 상여소리는 약 50명의 설화리 마을청년회를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마을에서 행해지는 상여놀이·상여소리를 보고 듣고 자란 경험이 있다. 역시 사람은 ‘본 바’가 있어야 따라 하는가보다.
설화리 상여소리는 발인·출상소리·마을 밖 나가는 소리·외나무다리 건너는 소리·오르막 오르는 소리·다리[달구] 소리의 순으로 진행된다. 본격적으로 사설이 시작되는 것은 상여가 집을 떠날 때 하는 출상소리다. 이때 망자를 대신해 상두꾼 전원이 상여를 멘 채 마을주민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는 절차가 있다. 남은 이들에게 올리는 망자의 마지막 하직인사인 셈이다. ‘마을 밖 나가는 소리’는 노제를 마치고 마을 어귀를 벗어날 때. ‘외나무다리 건너는 소리’는 장지로 향하는 도중에 만나는 외나무다리를 건널 때. ‘오르막 오르는 소리’는 험한 산길을 오를 때, ‘다리 소리’는 봉분을 만들기 위해 땅을 단단하게 다질 때 하는 소리다. 상여소리는 망자의 혼령을 달래고, 남아 있는 이들을 위로함과 동시에, 상여를 들고 있는 상두꾼들에게는 힘을 내라는 응원과 구령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설화리 상여소리 사설 일부를 한 번 살펴보자.

○ 출상소리 : 어제 날에 성턴 몸이 저녁나절 병이 들어, 인삼녹용 약을 쓴들 약덕인들 있을손가, 찾는 것은 냉수로다 부르는 건 엄마 불러, 가자가자 어서가자 북망산천을 찾아가자, 이래 갈 줄 내 몰랐다 언제다시 만나볼꼬… 닫은 문을 박차면서 성명 3자 불러내어, 멀고 먼 길 가자하니 사자 한 쌍 동행되어… 친구 벗님 많다 해도 어느 친구 동행할까, 형제 일신 많다 해도 어느 형제 대신 갈까, 사자님요 사자님요 내 말 잠깐 들어보소…
○ 다리소리 : 다리 주소 다리 주소 천년 집을 다리주소… 현풍이라 비들산은 비들산 명기로 여개로다, 대구라 팔공산은 팔공산 명기도 여개로다… 자손풍성도 할 것이고 위에 우뚝 명필봉은 암행어사 날 것이고, 옆에 층층 허리봉은 암행어사 출도하네… 정신차려 살펴보고 열시왕이 자리하고, 재판관이 문서잡고 착한사람 불러내어, 대접하고 공경하며 염라대로 가는 사람, 선녀 되어 가는 사람 백만 군사 도독되어…

4) 설화리(舌化里) 마을유래
마을이름이 좀 독특하다. 눈 속에 핀 꽃[雪花]이라고 보면 예쁜 이름이고, 세치 혀가 만들어내는 구설[舌禍]이라는 뜻으로 보면 불편한 이름이다. 설화1리 마을회관 앞 당산나무 아래에 설치된 안내판에 설화리 지명 유래설이 소개되어 있다. 참 흥미롭다. 요약해보면 이렇다.

마을 안 언덕에 봉긋하게 솟아 있는 말[舌·혀] 무덤이 있다. 설화는 조선시대 때부터 역촌마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역촌의 특성상 설화에는 주민과 객(客) 간의 말싸움이 그치지 않았다. 한 고승이 설화를 지나가다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책을 알려주었다. 마을 안에 말[舌] 무덤을 조성하고, 사람들 간에 말다툼이 시작될 때 당사자들의 수저를 말 무덤에다 꽂으라는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고승의 말대로 한 후부터 마을에서 말싸움이 사라졌다. 또 다른 유래는 옛날 이 마을에 살구나무가 많아 봄이 되면 살구꽃 날리는 모습이 마치 눈이 날리는 것 같다 해서 설화(雪花)라고 불리던 것이 변해 설화(舌化)가 되었다는 설이다.

5) 에필로그
120년 내력을 지닌 설화리 상여소리는 2015년 제56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 대구시 대표로 출전해 은상을 수상하는 등 다수의 수상실적을 올린 바가 있다. 또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힘들었던 2020년 여름에는 ‘Good Bye 코로나19’, ‘코로나19 종식 기원’을 테마로 화원전통시장에서 상여놀이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런 식이라면 조만간 설화리 상여소리가 무형문화재에도 등재되지 않을까? 지금도 음력 정월대보름이면 마을 중심에 있는 회화나무 당산에서 동제를 지내는 설화리. 정말 우리 고장 달서구와 달성군은 대구의 보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아참! 설화리에는 가수 고 김광석이 어린 시절 방학만 되면 찾아와 꿈을 키웠던 외가도 있다.
[참고문헌, 달성 설화마을의 살아 있는 생이(황영례)]

송은석(대구문화관광해설사) e-mail: 3169179@hanmail.net

설화리 상여소리 시연(사진:달성군 블로그 기자 김대식)
봉분 다지는 다리소리(사진:달성군 블로그 기자 김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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