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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140. 다람재와 도동터널
  • 푸른신문
  • 등록 2020-11-05 14: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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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지난주에 대니산 자락에 뿌리내린 네 그루 은행나무 노거수를 소개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11월 3일 기준으로 이들 은행나무는 대략 30~
80% 정도 단풍이 든 상태다.[도동서원·한훤당종택 은행나무(80%), 송담서원 은행나무(30%), 범안골 은행나무(50%)] 이들 은행나무 단풍을 보려면 서두르는 것이 좋겠다. 그런데 도동서원 은행나무 관련해 안타까운 점이 하나 있다. 최근 도동서원을 찾는 이들 대다수가 옛길인 다람재길이 아닌 작년[2019]에 개통된 도동터널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이는 똑똑한(?) 네비게이션 탓이다. 하지만 여행길이란 게 그렇다. 바쁘지 않다면 돌아가는 길을 택하는 것도 괜찮다. 가끔씩 남들이 못 보고 지나치는 귀한 장면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옛길 다람재길이 그렇다.

2) 길이 산을 만나면 재 아니면 터널
몇 해 전, 문경세재 초입에 자리한 옛길박물관에서 정신이 번쩍 드는 멋진 문구를 만난 적이 있다. 고산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 목판에 덧붙인 글이라고 한다.

天下之形勢視乎山川(천하지형세시호산천) 천하의 형세는 산천에서 볼 수 있다.山主分而脈本同(산주분이맥본동) 산은 본디 하나의 뿌리로부터 수 없이 갈라져 나가는 것이다.水主合而源各異(수주합이원각이) 물은 본디 다른 근원으로부터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다.

이 글의 요지는 ‘천하의 형세는 산과 물을 통해 살펴 볼 수 있다’는 것. 산의 속성은 ‘분산’이다. 한 뿌리에서 시작되어 수 만 가지로 뻗어나가는 나뭇가지를 닮았다. 반대로 물의 속성은 ‘수렴’이다. 각기 다른 근원에서 출발했으나 나중에는 하나로 합쳐진다. 달라도 너무 다른 산과 물.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산과 물은 항상 같이 붙어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산이 있으면 반드시 그 아래에 골이 있기 마련이다. 골은 곧 물길이다. 풍수지리에서는 한 치만 높아도 산이요, 한 치만 낮아도 물이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서로 정반대의 속성을 지닌 산과 물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길은 필요에 따라 산을 넘기도 하고, 물을 건너기도 한다. 이 때 길이 산을 만나면 고개[재]가 되고, 물을 만나면 나루가 된다. 옛길박물관에 전시된 위 인용문 아래로 다음과 같은 멋진 설명문이 계속 이어진다.

路(길), 길이 산을 만나면 고개요, 물을 만나면 나루이다.산천 위에 A지점에서 B까지 이동하는 것이 길이다. 이때 길은 가면서 산과 물을 만나기를 수없이 되풀이한다. 산을 한 번 만나면 그 다음에는 반드시 물을 한 번 만나야 하고, 물을 만난 다음에는 또 다시 산을 만나야만 한다. 산을 연거푸 두 번 넘을 수는 없으며, 물을 연거푸 두 번 건널 수도 없다. 그것이 바로 길이다. 길이 산을 만나면 고개요, 물을 만나면 나루이다. 그리하여 이 땅의 그 모든 길들은 고개 한 번, 나루 한 번의 공식을 어김없이 반복하며 존재한다. 길은 사람이나 동물 또는 자동차 따위가 지나갈 수 있게 땅위에 낸 일정한 너비의 공간을 말한다. [문경 옛길박물관]

다람재 정상에 설치된 정자와 한훤당 시비

3) 다람쥐를 닮아 다람재
달성군 현풍읍과 구지면의 북쪽 경계가 되는 다람재. 해발 약 250m인 다람재는 현풍읍 자모리 느티골과 구지면 도동리 정수골을 잇는 고개다. 예로부터 도동서원이 있는 도동리 주민들이 현풍읍내로 나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걸어서 갈 때는 다람재 아래 낙동강변 오솔길로 다녔고, 수레를 이용할 때는 다람재길을 이용했다. 하지만 다람재길은 도로가 아니라 수레 하나 겨우 지나갈 정도의 험한 산길이었다. 그래서 도동리 주민들에게 있어 차가 다닐 수 있는 다람재길 건설은 오랜 숙원이었다.
1986년 하반기. 드디어 도동리 주민들의 숙원사업이었던 다람재길이 건설됐다. 다람재길 건설은 당시 이상배 경북지사와 지역 출신 육군 50사단장이었던 정재경 소장이 힘을 합친 결과였다. 다람재길은 1986년 8월 17일 공사를 시작해 같은 해 12월 20일 완공됐다. 평지도 아닌 고갯길 2,280m를 건설하는 이 공사에는 50사단 야전공병단이 투입됐다. 총공사비는 5천만 원, 시공에서 완공까지 걸린 기간은 4개월.
다람재란 예쁜 이름은 이 고개의 모습이 마치 다람쥐를 닮았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어떤 이는 이 고개에 다람쥐가 많아 다람재라 주장하기도 한다. 다람재 정상에는 정자와 다람재 표지석, 한훤당 선생 시비가 세워진 작은 휴식공간이 있다. 예전에는 다람재를 오가는 길손들이 안전을 빌며 쌓아 올린 돌탑 2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1기만 있다. 요즘 같이 시정이 좋은 가을철에는 이곳 다람재가 도동서원 가는 길에 꼭 한 번 들려야하는 필수코스다. 다람재 정자에 올라서면 발 아래로 도동서원과 낙동강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낙동강 너머로는 고령군 개진면 들판이 펼쳐진다. 국내 최고 품질 기와를 생산하는 ㈜고령기와, 개진 초·중등학교가 자리한 오사리, 그 옛날 낙동강 수로를 통해 운반된 팔만대장경판을 하선했던 개경포도 보인다. 시정이 좋을 때는 가야산까지도 조망이 가능하다.

도동리와 낙동강, 멀리 가야산도 보인다

4) 10분에서 2분으로 단축, 도동터널
2019년 개통된 도동터널[330m]은 다람재 산자락을 동서로 관통하는 터널이다. 과거에는 차량으로 2㎞ 다람재 구간에 10분 정도 소요됐지만 지금은 터널 개통으로 2분으로 줄어들었다. 또한 겨울철이면 눈이 조금만 내려도 다람재 통행이 어려웠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일이 없다. 이처럼 도동터널 개통은 주민은 물론 도동서원을 찾는 관광객들에게도 많은 편의를 제공했다. 특히 낙동강자전거길을 달리는 자전거동호인들에게는 더 할 수 없는 반가운 선물이었다. 자전거동호인들 사이에서 ‘마의 구간’으로 불리는 다람재길을 우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에필로그
집은 사람이 살아야 하고, 길은 사람이 다녀야 한다. 아무리 좋은 집도 사람이 거처하지 않으면 허물어지고, 좋은 길도 사람이 다니지 않으면 이내 덤불숲이 되는 법이다. 도동터널이 개통되면서 옛길 다람재길을 이용하는 차량 수가 눈에 띄게 많이 줄었다. 특히 대형관광버스 통행은 거의 없다. 다람재길은 일종의 차도다. 차도는 차가 다녀야 차도로서 역할과 수명을 다 할 수 있다. 다람재길에 차가 많이 다닐 때는 길 위에 나뭇가지나 잔돌 같은 것이 별로 없었다. 또 도로 쪽으로 자라거나 도로 위로 쳐지는 나뭇가지들은 가끔씩 지나는 대형버스나 트럭이 자연스럽게 정리해줬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르다. 특히 도로변 가로수 가지가 대형버스 통행에 불편을 주고 있다. 필자는 지금도 한 달에 2-3번 정도는 대형버스를 이용해 관광객들을 모시고 도동서원을 방문한다. 솔직히 그때마다 고민이다. 관광객을 생각하면 다람재길로 가야하고, 기사님을 생각하면 도동터널로 가야하니. 그래도 아직까지는 관광객들을 위해 다람재길을 고집하고 있다. 기사님들께 욕먹을 각오를 하고…

송 은 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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