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사철 아름다운 모습으로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대구수목원은 가을에는 좀 더 정열적인 색깔로 방문객들의 시선을 끈다. 대구수목원 입구 오른쪽 등성이부터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인 꽃무릇 때문이다.
새색시의 녹의홍상을 연상시키는 듯 가녀린 초록 줄기 위에 왕관처럼 독특한 모양의 붉은 꽃이 피는 꽃무릇. 유난히 짙은 선홍빛을 발하는 꽃잎에서 왠지 모를 애틋함이 묻어나는 건 잎과 꽃이 서로 만날 수 없기 때문이리라. 이런 연유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뜻하는 상사화라고 흔히들 알고 있는데 이번에 취재하면서 조사해보니 상사화는 연보랏빛이나 노란색 꽃이고 꽃모양이나 개화시기도 다르다. 꽃무릇의 정식 명칭은 돌틈에서 나오는 달래를 닮았다 해서 석산화(石蒜花)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꽃무릇 군락지는 고창 선운사와 영광 불갑사이다. 해마다 꽃무릇이 절정을 이루는 9월이 되면 전국에서 꽃무릇을 보기 위해 매일 수십 대의 관광버스가 몰려든다고 한다. 너무나 화려하고 매혹적인 빛깔이 조용한 절집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유독 절집에 꽃무릇이 많은 이유가 있는데 바로 꽃무릇에 있는 독성 때문이다. 사찰과 불화를 보존하기 위해 단청이나 탱화에 독성이 강한 꽃무릇의 뿌리를 찧어 바르면 좀이 슬거나 벌레가 꾀지 않는다고 한다.
꽃무릇은 다른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여름 내내 죽은 듯이 땅에 묻혀 있다가 다른 나무가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가을에 땅속에서 불쑥 꽃대를 내밀어 꽃을 피운다. 꽃이 진 자리에는 곧바로 진초록의 새잎이 돋아나 겨울을 난다. 낙엽이 진 큰 나무의 앙상한 가지사이로 충분한 햇빛을 받으며 추운 겨울을 무사히 보내는 것이다. 새봄이 되어 큰 나무의 잎이 돋아나면 반대로 꽃무릇 잎은 말라버리고 단풍이 드는 가을에 다시 기가 살아난 꽃무릇은 예쁜 꽃을 피운다. 이것이 꽃무릇의 지혜다.
코로나로 다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춥고 혹독한 겨울 큰 나무 아래에 납작하게 엎드려 내년에 꽃피울 힘을 키우는 꽃무릇처럼 이 힘든 시기를 지혜롭고 건강하게 잘 버티길 응원해 본다.
서순옥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