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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127.적멸보궁 비슬산 용연사와 금강계단(1)
  • 푸른신문
  • 등록 2020-07-28 12:4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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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적멸보궁’, 줄여서 ‘보궁’이라는 말이 있다.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한 번씩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절을 적멸보궁이라 한다. 우리나라에는 이름난 적멸보궁 5곳이 있다. 양산시 영축산 통도사, 강원도 오대산 중대, 강원도 설악산 봉정암, 강원도 사자산 법흥사, 강원도 태백산 정암사. 이들을 한데 묶어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이라 한다. 8대 적멸보궁도 있다. 5대 적멸보궁에다 3곳을 더하면 된다. 강원도 금강산 건봉사, 구미 태조산 도리사 그리고 우리고장 대구 비슬산 용연사다. 이번에는 2회에 걸쳐 8대 적멸보궁 중 한 곳인 용연사(龍淵寺)에 대해 알아보자.

2) 달성 용연사 금강계단
익히 알다시피 비슬산에는 골골마다 정말 많은 사찰이 있다. 이중 대표 사찰 한 두 곳을 꼽으라면 아마도 용연사가 첫손가락에 꼽힐 것이다. 사찰의 입지나 규모도 규모지만 누가 뭐래도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기 때문이다.
용연사에는 문화재가 여러 점 있다. 그 중에는 국가보물로 지정된 것도 3건이나 있다. 용연사 금강계단(보물 539호), 용연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및 복장유물(보물 1813호), 묘법연화경 권4-7(보물 961-3호). 그 외에도 용연사 삼층석탑(대구시 문화재자료 28호), 용연사 극락전(대구시 유형문화재 41호) 등이 있다.
스님들의 묘, 다시 말해 사리를 봉안한 탑을 부도탑이라 한다. 용연사 금강계단(金剛戒壇)은 스님들이 지켜야 할 계율인 구족계를 받는 수계의식 공간이자,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석가여래부도탑이기도 하다. 참고로 금강계단은 우리가 알고 있는 층계 계단(階段)이 아닌 지면보다 높이 쌓은 단을 말한다.[이때는 ‘계’자를 조금 더 길게 발음한다]
용연사 금강계단에 이처럼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데는 좀 복잡한 내력이 있다. 그에 대해서는 조선후기 사헌부 지평을 지낸 남곡 권해[1639-1704]가 지은 「사바교주 석가여래 부도비명 병서」에 잘 나타나 있다. 그 대강을 한 번 살펴보자.

신라 승려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얻어 우리나라로 모셔왔다. 진신사리는 2개의 함에 각각 2과씩 나눠 담아 통도사에 봉안했다. 임진왜란 때 왜적들이 이 사리탑을 훼손하고 사리를 꺼냈는데 사명대사가 격문으로 왜적을 꾸짖어 사리를 되찾았다. 사명대사는 사리를 받들고 금강산으로가 서산대사에게 사리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물었다. 논의 끝에 한 함은 태백산 보현사에 봉안하고, 다른 한 함은 사명대사로 하여금 다시 통도사에 봉안토록 했다. 그런데 사명대사가 어명으로 왜국에 갈 일이 생겼다. 사명대사는 사리함을 임시로 치악산 각림사에 두기로 했는데, 그의 문도인 청진스님이 이를 용연사로 옮겨왔다. 이후 대중의 논의를 거쳐 1과는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의 뜻을 받들어 통도사에 봉안하고, 1과는 용연사 북쪽 기슭에 봉안키로 했다. 1673년[계축년] 5월 5일 탑을 완성했으니 높이가 5척 5촌이었다.

권해는 이어 자신이 「사바교주 석가여래 부도비명 병서」를 짓게 된 내력과 함께 시 한 수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 한다.
절의 승려인 광헌·관륜 등이 나를 찾아와 비명을 청했다. 나는 공자의 글을 읽어 불교의 말을 일찍이 본적이 없다. 하지만 석가여래를 묻은 지 1,600여년이 되었으며, 그 사리가 중국을 거쳐 5만리를 지나 통도사에 봉안된 지 940여 년이 됐다. 왜적으로부터 되돌려 받은 지 80여년이 지나 통도사와 용연사에 나눠 비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대의 말을 믿는다면 신령하고 기이한 일이 아니겠는가. ‘비슬산은 울창하고 낙동강은 양양한데, 탑이 우뚝 솟았으니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 하였네’

금강계단은 돌을 사용해 2단으로 쌓은 정사각형 평면 위에 범종 모양의 석종형 사리탑이 올라가 있는 형태다. 2단 기단 중 상단 동서남북 4측면에는 팔부신장이 새겨져 있고, 그 앞쪽 4방향에는 각각 사천왕상이 세워져 있다. 계단 주변으로는 돌난간이 둘러져 있고, 석등과 배례석을 갖췄다. 전면 좌우측에 3기의 비가 있는데, 석가여래부도비(1676년)·용연사 사적비(1754년)·석가여래중수비(1934년)다.

3) 불상 없는 법당 적멸보궁
우리나라 사찰 법당에는 대부분 ‘○○전’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해당 법당에 주불로 모셔진 불보살이 어느 분인가에 따라 ‘대웅전’도 되고, ‘극락전’, ‘비로전’도 되는 식이다. 그런데 아주 드문 예로 ‘적멸보궁’이라 불리는 법당도 있다. 적멸보궁(寂滅寶宮)이란 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든 부처님이 거처하는 장엄한 공간이란 의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적멸보궁 내부에는 아무런 부처님도 안 계신다는 점이다. 부처님의 자리인 불단[수미단]도 갖춰져 있는데, 정작 불단 위에는 있어야할 불상이 없는 것이다. 도대체 어찌된 것일까?
적멸보궁은 글자 그대로 열반에 드신 부처님이 계시는 곳이다. 다만 여느 법당처럼 수미단에 불상 혹은 불화의 모습으로 안 계실 뿐이다. 이처럼 법당 내부에 부처님이 안 계신데도 보궁이라 이름 한 데는 까닭이 있다. 적멸보궁 수미단 뒷벽에 설치된 투명유리창을 통해 뒤뜰에 계신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표 적멸보궁인 통도사 적멸보궁처럼 용연사 적멸보궁도 수미단 뒤편 투명유리창을 통해 금강계단과 그 위에 조성된 석가여래부도탑을 볼 수 있다. 신도들은 수미단에 좌정한 불상이 아닌 유리창너머로 보이는 부도탑을 바라보며 예불을 올린다. 불상도, 불화도, 법신사리도 아닌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부도탑을 친견할 수 있다는 건, 불자들에게 있어 최고의 예불공간이라 할 수 있다.
본래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탑 신앙이 먼저 있었다. 하지만 ‘8섬4말’이나 나왔다는 부처님 진신사리도 그 양이 유한한 만큼 한계가 있었다. 결국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리탑 대신 불상이 등장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부처님 진신사리의 위상을 능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유한한 진신사리를 대체하기 위해 또 다른 형태의 사리가 생겨났다. 바로 ‘법신사리’다. 법신사리는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경전을 사리화한 것. 우리가 잘 아는 불국사 석가탑에서 나온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같은 것이 법신사리다. 하지만 법신사리 역시 진신사리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다음 호에 계속…

비슬산 용연사 금강계단(보물 539호)
수미단 뒤편 유리창을 통해 석가여래부도탑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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