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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고 답하다] 대기만성
  • 푸른신문
  • 등록 2020-07-28 12:4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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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은 어릴 적에 거의 말을 하지 않고 혼자 놀기만 해서 주변사람들로 하여금 혹시 벙어리가 아닐까 하는 걱정을 들었다고 한다. 그는 신경질적이어서 여동생을 다치게 하는 등 여러 가지 사고를 치기도 했다. 그를 가르쳤던 교사들의 평가는 한결같이 그가 나쁜 아이라는 것 이었다. 공립학교에 들어가서는 구구단을 외우지 못했고, 반사신경이 너무 둔해 늘 엄격한 교사로부터 손바닥을 맞았다. 계산하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었고 그나마 틀린 답을 내놓기 일쑤였다고 한다.
9세에 그는 뉴욕에 있는 학교에 진학을 했는데 라틴어 성적은 ‘양’, 그리스어 성적은 ‘가’를 받았다고 한다. 그를 담당한 그리스어 교사는 “너는 사람 구실을 못할 것 같다”고 단언을 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결국 학교를 중퇴하고 마는데, 그 사유는 “네가 우리 학급을 다 망친다”라는 교사의 평가 때문이었다. 즉 사고뭉치였던 셈이다.
아무리 못난 사람도 언젠가는 빛을 볼 날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얼마나 많은 피눈물 나는 노력과 고생이 있었겠는가.
에디슨(Thomas Alva Edison, 1847~1931), 1,200번 실패해도 끝내 백열전구 발명.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할 때의 일이다. 700번째 만든 백열전구가 5초도 안돼서 꺼졌다. 천재적인 발명가 에디슨도 도무지 무엇이 문제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에디슨 이전에도 백열전구를 만들었던 사람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전구는 모두 전원이 들어오자 4, 5초를 견디지 못하고 꺼졌다. 누구도 수명이 오래가는 전구를 발명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에디슨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포기를 몰랐다. 그는 실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실험에 몰두했다.
그리고 마침내 1879년 10월 21일, 에디슨은 무려 1,200번이 넘는 실험 끝에 백열전구를 발명했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자, 기자들이 에디슨에게 물었다. “전구가 발명되기전까지 1,200번이 넘게 실패했는데 사실입니까?” 에디슨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전구가 켜지지 않는 방법을 1,200여 가지나 알아낸 것이지요.”
일본에 가면 장어구이 요리가 맛있는데 가격 또한 어마어마하게 비싸 웬만한 부자들조차 엄두를 못 낼 정도라고 한다. 그렇지만 일본의 장어구이 요리가 이유 없이 비싼 것은 아니다. 그 맛이 그만큼 훌륭하기 때문이며, 그 정도로 요리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까닭이기 때문이다. 장어요리 요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자그마치 10년의 세월이 걸린다고 한다.
일류 장어구이 요리사가 쓸 만하다고 생각되는 젊은 조수 한명을 받으면 숯불 피우는 요령 2년, 장어 껍질 벗기고 토막 내는 기술 3년, 그리고 장어를 숯불에 익히는 기술 3년을 습득해야 비로소 한 사람의 장어구이 요리사로 인정받는다고 한다. 그러니 당연히 맛있을 것이고, 비쌀 것이며,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요리사의 자긍심 또한 어느 전문직 못지않게 대단히 높다는 것이다. 조그만 식당이나 과자집일지라도 이러한 장인 정신으로 가업을 5대, 10대째 물려가며 지켜 오고 있다 하니 부러울 뿐이다.
구용희 건양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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