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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118. 봉황·용 전설이 깃든 금봉산 금용사
  • 푸른신문
  • 등록 2020-05-2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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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2020년은 코로나와 함께 시작됐다. 전 세계는 코로나 펜데믹에 빠졌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대구는 코로나19의 공포를 온몸으로 직접 체험했다. 5월 들어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자 대구시민들은 가까운 산과 들, 공원을 찾아 조심스럽게 외출을 시작했다. 필자 역시 부처님 오신 날을 하루 앞둔 4월 29일. 두류공원 내에 있는 금용사를 찾았다.


2) 봉변성룡, 봉황이 용이 되어 깃들다


두류공원은 2개의 작은 산[봉우리]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당못과 대구문화예술회관이 자리한 금봉산(金鳳山)과 이월드가 자리한 두류산이다. 두 산 모두 대구의 남쪽 영산인 비슬산 지맥이 흘러와 만든 봉우리다. 금봉산 두류실내수영장 뒤편 산기슭에 금용사란 이름의 예쁜 비구니 사찰이 있다. 많은 절집이 그러하듯 이곳 금용사에도 전설따라 삼천리 풍의 흥미로운 창건설화가 전해진다.

고려시대, 40년 동안 무려 6차에 걸친 몽고 침략으로 우리나라에 몽고 풍습이 유행했다. 당시 한 부자가 오랑캐 몽고 풍습을 피해 가족을 거느리고 이곳 금봉산에 들어와 ‘금봉사’를 짓고 자신의 원찰로 삼았다. 조선시대에 금봉사는 숭유억불정책에 따라 강제 폐사됐다. 금봉사를 헐 때 산이 갈라지는 천재지변이 있었고, 이후 절터는 못이 되어 금봉사는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근세에 와서 불심이 깊었던 김송동(金松東) 보살이 금봉산에 절을 짓기로 했다. 터를 살피던 중 성당못 주변에 묘를 쓰기 위해 땅을 파면 불상조각·토기·기와·전돌 등이 나온다는 주민들의 말을 듣고, 1926년 이곳에 대웅전과 요사 2채를 짓고 ‘금용사’라 이름 했다. 이후 김송동 보살은 출가하여 본심(本心)이란 법명으로 평생 이 절에서 정진했다.금용사란 절 이름은 금봉사가 폐사될 때 금봉산 봉황이 용으로 변했다는 이 지역 전설에 유래한 것이다. 말하자면 봉황이 머물 때는 금봉사였다가, 용이 깃든 이후부터 금용사가 된 셈이다. 1926년 김송동 보살 중창 당시 금용사 위치는 지금의 두류실내수영장 별관자리였다. 그런데 1986년 대구에서 개최된 전국체전 때 금용사 일대가 수영장부지로 편입, 당시 주지 혜선 스님이 금용사를 지금의 자리로 옮겨 현재에 이르고 있다.


3) 안수정등 벽화


대부분 사찰 전각 외부 벽에는 불교와 관련된 벽화가 그려져 있다. 붓다의 일생을 8개의 그림으로 표현한 팔상도나 마음공부과정을 소를 길들이는 것에 비유한 심우도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금용사 대웅전 외벽에도 심우도를 비롯한 여러 벽화가 그려져 있다. 그 중 흥미로운 스토리를 담고 있는 벽화 하나가 눈에 띈다. ‘안수정등(岸樹井藤)’으로 알려진《불설 비유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안수정등은 벼랑에 서 있는 나무와 우물의 등나무란 뜻이다.
한 나그네가 광야를 걷다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성난 코끼리를 발견했다. 다행이 주변에 우물이 있어 나그네는 넝쿨을 붙잡고 우물 안에 매달린 채 코끼리를 피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나그네는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았다. 우물 바닥에는 거대한 뱀이 입을 벌린 채 나그네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그 주변에는 독사 4마리가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머리를 들어 위를 보니 검은 쥐와 흰 쥐가 자신이 붙잡고 있는 넝쿨을 갉아 먹고 있었다. 놀란 나그네가 우물을 빠져나가려고 우물 밖을 내다보니 사방에서 들불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죽음의 공포에 내몰린 나그네. 그런데 어디선가 꿀이 한 방울씩 나그네의 얼굴에 떨어졌다. 나그네는 금세 죽음의 공포를 잊고 달콤한 꿀을 받아먹는데 정신이 팔렸다. 그것도 잠시 넝쿨이 바람에 흔들리자 벌들이 날아와 나그네를 쏘아댔다. 나그네는 벌을 피하려고 넝쿨을 놓으면 뱀의 먹이가 될 것이고, 우물 밖으로 나가면 들불에 타죽을 상황에 직면했다.
그림에 묘사된 나그네는 중생, 광야와 들불은 우리가 사는 사바세계, 성난 코끼리는 무상으로 흐르는 세월, 우물은 생사의 깊이, 넝쿨은 목숨, 큰 뱀은 죽음, 4마리 독사는 육체를 구성하는 지·수·화·풍, 흰 쥐와 검은 쥐는 생명을 재촉하는 낮과 밤, 꿀은 수면욕·식욕·성욕·명예욕·재물욕 같은 인간의 다섯 가지 욕망을 상징한 것. 깨닫지 못한 중생의 어리석음을 불교적 관점에서 한 폭 그림에 담은 것이다. 


4) 수미산 사왕천의 네 방위신 사천왕


금용사 뜰 가운데 5층 석탑 1기가 서 있다. 이 탑 1층 탑신 네 면에는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사천왕(四天王)이 새겨져 있다. 사천왕은 불교의 수미산 우주론에서 사왕천(四王天) 세계를 다스리는 네 분의 신이다. 사왕천은 부처님이 계신 수미산 정상 도리천 아래 산 중턱쯤에 있는 신들의 세계다. 이곳에서 사천왕은 동·서·남·북 네 방위를 수호하고 관할하는 일종의 방위신 역할을 하고 있다. 규모가 큰 사찰의 경우 일주문 다음에 만나게 되는 문이 사천왕문이다. 수미산 중턱에서 부처님을 수호하는 것처럼, 사찰에서도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목에 서서 불법을 수호하는 것이다. 우락부락 험상궂게 생긴 네 분의 사천왕은 ‘동방 지국천왕·남방 증장천왕·서방 광목천왕·북방 다문천왕’이다. 얼핏 보면 모습이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이 다르다. 지국천왕은 비파, 증장천왕 보검, 광목천왕은 용과 여의주, 다문천왕은 보탑을 들고 있다. 이중 다문천왕을 제외한 나머지 세 천왕은 종종 손에 든 지물이 바뀌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다문천왕만큼은 절대 보탑을 손에서 놓는 법이 없다. 다문천왕은 불법수호를 맹세한 사천왕들의 대장이기 때문에 부처님을 상징하는 보탑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것이다.   
 
5) 에필로그


금용사는 도심 속 산지사찰이다. 규모는 작지만 비구니 사찰답게 정갈하고 아기자기한 멋이 있다. 필자는 지난 2007년 금용사 대웅전 외벽에 그려진 이상한(?) 심우도[십우도]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당시 금용사 심우도 열 개의 그림 중 여덟 번째 ‘인우구망’과 아홉 번째 ‘반본환원’이 서로 바꿔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 지금도 예전 그림 그대로다. 참고로 심우도와 비슷한 류의 그림으로는 목우도·팔우도가 있고 티베트 불교에는 소를 코끼리로 대체한 십상도도 있다.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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