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정려각 ‘현풍곽씨 십이정려각’

달성군 현풍읍 솔례 용흥지 옆에는 대구문화재자료 제29호로 지정된 현풍곽씨 십이정려각이 있다. 유교 도덕에 기본이 되는 삼강(三綱)을 지킨 28인의 정려비로, 선조 31년(1598)부터 영조 때까지 포상된 12명을 한곳에 모시고 있다. 1995년 5월 12일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으며 조선 중기 영조 때 세운 정려각이다.
‘정려각’ 이란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기리고자 그들의 집 앞이나 마을 앞에 정문을 세우고 표창하기 위해 건립한 건물로 실제로 내부에는 정려비나 현판처럼 만든 정려기를 모신다.
조선시대에는 이처럼 임금과 신하·아버지와 자식·남편과 아내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잘 지키면 국가에서 포상하고 정려(旌閭) 하였던 것이다.
현풍곽씨 십이정려각은 이름에서처럼 솔례마을의 현풍곽씨 일문에 포상된 12정려를 한 곳에 모은 곳으로서 정려가 내려질 때마다 따로 여각을 세우던 것을 영조 1년 이후 현재의 자리로 모아 세웠다고 한다. 전국에 모두 수 천 개의 정려가 있지만 한 마을의 한 문중에서 12정려가 내려진 일은 매우 드물기에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이다.
건물은 10개의 정려와 2개의 비각을 한 데 모아 정려각으로서는 국내 최대칸이다. 정면은 하나의 사진에 다 닮지 못할 정도로 길쭉한 형태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주변은 전통적인 방식의 나지막한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어 고즈넉함을 주고, 잔디와 수목을 정비해 아주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구체적인 정려의 내용을 대략 살펴보면 1597년 정유재란 때 안음현감으로 황석산성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가족과 함께 순국한 곽준과 그 의 두 아들, 딸이 삼강이라 하는 충, 효, 열세 가지를 모두 실천하였다 하여 일문삼강으로 정려된 것과 임진왜란 때 왜적으로부터 병환 중인 부친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은 4형제에게 선조가 정려한 일 등 하나하나가 다 조선시대의 삼강오륜을 지켜 모범이 된 일이다. 십이정려각에는 삼강 2효자와 열부 6정려, 4효자를 기린 2기의 비석과 12개의 현판이 보존되어 있다.

이원욱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