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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고 답하다] 정심_正心
  • 푸른신문
  • 등록 2020-05-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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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금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지만, 그 이전에는 군(軍)에서 오랜 기간 동안 몸을 담았었다. 영관장교 시절, OO사령부에서 장교들의 인사교류를 담당하는 일을 했다. 그 일 중의 하나가 중대장(대위) 보직을 교류시키는 것이었다. 즉 중대장 개인을 기준으로 했을 때 재임기간을 이등분하여 인사교류를 통해 1, 2차로 나누어 보직시키는 것이다. 어느 장교가 1차 중대장을 마치고 2차 중대장으로 보직할 부대를 정할 때에는 임무와 성격이 다른 부대로, 그리고 도(道) 단위를 기준으로 다른 지역으로 배치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는 장교들간에 형평성을 도모하는 목적도 있지만 경험의 폭을 넓히기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그러던 어느날 한 장교가 나를 찾아왔다. 나의 고객인 중대장 교류 대상자였다. 그는 나에게 사정 얘기를 했다. 현재 1차 중대장을 하고 있는데, 그의 아내는 학교 선생님으로 맞벌이 부부라고 했다. 지금까지 부부가 함께 살며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왔는데, 2차 중대장을 타 지역으로 가게 되면 부부가 떨어져 살아야 하고 연로한 부모님을 모실 수 없으니 선처해 달라는 것이었다. 사정이 딱하였지만 나는 인사교류의 기준을 얘기해 주고 그를 돌려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가 돌아가고 나서 자리를 정리하다 보니 흰 봉투가 하나 보였다. 봉투를 살펴보니 조금 전 다녀간 그 장교가 자기의 사연을 적은 편지와 10만원 권 수표 한 장을 놓고 간 것이었다. 나는 즉시 그의 뒤를 쫓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다음 날 아침, 나는 그의 부대로 전화를 걸어 그를 한참 혼내주었다. 그리고 영내 우체국을 통해 수표를 그에게 발송하였다. 그 장교를 눈물이 쏙 빠질만큼 혼내주었지만, 나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 자신도 부부는 떨어져 살면 안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연로한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인사교류 기준과 인간적인 연민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리고 더 큰 고민이 있었다. 과연 부서장님(장군)께서 승인해 주실까? 인사분류 기준대로 하면 되는 것을 공연히 문제만 야기하고 괜한 오해나 받는 것이 아닌가? 특정인을 봐주려 한다고 핀잔만 듣는 것이 아닌가? 하는 등등... 다음날 나는 인사교류 안(案)을 결재 받으러 부서장님께 갔다. 나는 수십여 명의 인사교류 대상자에 대해 보고드려 모두 승인을 받았다. 그리고 어제의 그 장교 건은 별도로 보고를 드렸다. 그 장교의 사정을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기준에는 맞지 않지만 그 장교는 예외적으로 동일 지역의 부대로 조치해 줄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역설했다. 부서장님께서는 한동안 나를 바라보시더니 “자네가 계획한 대로 조치해 주게”라고 말씀하는 것이 아닌가. 승인을 받은 것이다.나는 내가 한 일에 대해 무한한 자긍심과 보람을 느꼈다. 그것도, 조금의 사심도 없이 한 가정의 행복을 지켜주었다는 사실에 내 자신이 더 행복했다. 나는 지금도 그러한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기준대로, 규정대로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 인간미를 더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인간미는 어떠한 사심도 없어야 한다는 것을.

구용회 건양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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