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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동, 복숭아꽃 향기 가득한 마을의 시간 여행
  • 변선희
  • 등록 2025-09-02 12:5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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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과 나무, 그리고 골짜기에 담긴 도원동의 400년 이야기
  • 청룡산 설화에서 당산나무 신앙까지, 삶과 죽음의 흔적 간직

 도원동 수밭마을 느티나무 당산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달서구 도원동 마을길. 

한눈에 보기엔 평범한 주거지역 같지만,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오래된 흔적들이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집 담장 사이로 불거진 바위, 길모퉁이에 자리 잡은 나무 한 그루, 그리고 이름만 남은 옛집의 흔적들. 


도원동은 단순한 옛이야기가 아니라, 한 공동체의 삶과 문화, 믿음이 오롯이 녹아 있는 살아 있는 역사다. 이곳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송은석 향토사학자가 기자와 함께 마을 구석구석을 걸으며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도원동이라는 이름은 ‘복숭아 도(桃), 동산 원(園)’에서 비롯됐다. 전해 내려오길, 마을 어귀마다 복숭아나무가 줄지어 심겨 있어 매년 봄이면 분홍빛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마치 신선이 사는 무릉도원 같았다 한다.


달서구 청룡산 골짜기 사이로 흐르는 작은 시냇물 위에 봄이면 복숭아꽃이 떠내려온다고 하여 사람들은 자연스레 이곳을 ‘도원동’이라 불렀다.

 

달서구 도원동 청룡산 자락

도원동의 역사는 약 400년. 임진왜란 무렵 밀양 박씨가 먼저 터를 잡았고, 이어 고령 김씨가 마을에 들어와 공동체를 이루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도원동에는 도원1동(수밭마을)과 도원2동(원득·못밑) 등 세 개의 자연부락이 존재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마을은 아파트 단지로 변했지만, ‘수밭마을’만이 옛 모습을 간직하며 옛 시간을 고스란히 전한다.

 

마을 중심부로 들어서자, 수령 400여년의 느티나무 당산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주민들은 이 나무 아래서 매년 동제를 지내며 마을의 평안을 기원했다. 한때 동제를 지내지 못한 시절, 마을에 불운이 닥쳤고, 밤이면 나무가 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시 동제를 지낸 이후 마을은 평화를 되찾았고, 오늘날까지 정월보름이면 당제를 이어가며 선조들의 전통을 잇고 있다. 오늘날 동제는 거의 사라졌지만, 나무는 여전히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서 있다.

 

도원동 주변의 고개와 길에도 풍성한 전설이 숨어 있다. ‘수밭고개’, ‘위티재’, ‘이태재’는 과거 가창 정대리 주민들이 장을 보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했던 길이었다. 특히 ‘이태재’는 길이 험난해 한 번 넘는 데 2년이 걸렸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작은 길 하나에도 사람들의 삶과 자연, 전설이 스며 있는 셈이다.

 

덩원동 상엿집

약 300년의 역사를 지닌 도원동 상엿집은 마을의 또 다른 시간의 흔적이다. 과거 장례를 치르던 공간으로, 고인을 관에 담아 이동시키던 상여와 가마를 보관했다. 원래 수밭마을에 있던 상엿집은 약 250년 전 현재 위치로 옮겨졌으며, 2016년 달서구청이 옛 모습을 최대한 살려 보수했다. 지금도 대구광역시에서 남아 있는 유일한 상엿집으로, 마을 사람들의 삶과 죽음이 함께 얽힌 공간이다.

 

수밭골의 명산이라 하는 청룡산(해발 794m)은 비슬산과 앞산을 잇는 산줄기 위에 우뚝 솟아 있다. 정상에 오르면 배바위, 상여바위, 병풍처럼 길게 펼쳐진 청룡바위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청룡바위에는 오래 전부터 신비로운 전설이 내려온다. 세 마리 용이 하늘로 오르다 서로 다투며 떨어져 봉우리가 되었다는 이야기, 대홍수 때 스님이 만든 나룻배에 사람들이 올라 목숨을 건졌다는 이야기 등이 대표적이다.


이 전설들은 단순한 옛날이야기를 넘어, 자연과 인간, 그리고 신앙이 한데 어우러진 마을의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청룡산의 바위들은 단순한 돌덩이가 아니라, 재앙 속에서도 생명을 이어가려는 희망과 하늘을 향한 기원의 상징으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도원동 수밭마을 '할배바위'(좌), '할매바위'(우)

도원동 수밭마을 입구에는 나란히 선 바위 두 덩이가 있다. 마사람들은 이를 ‘천황바위’, ‘거북바위’, 또는 ‘할매·할배바위’라 불렀다. 큰비가 오면 할배바위가 물에 잠겨 거북이 떠 있는 모습과 흡사해 ‘거북바위’라 불렸으며, 마을의 수호신적 상징으로 여겨졌다. 지금의 동원지 저수지 조성 과정에서 옮겨져 현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실 한국의 자연부락에는 유난히 ‘거북바위’, ‘두꺼비바위’가 많다. 두 동물은 물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어, 마을에서는 물을 다스리고 재앙을 막아주는 수호신으로 여겼다. 거북과 두꺼비는 또 재물을 불러오고 흉한 기운을 물리친다는 의미도 있었다. 그래서 대구 지역의 옛 마을들에는 특히 거북바위가 흔히 발견된다.

민담 속에서도 이 상징은 드러난다. ‘콩쥐 팥쥐’ 이야기에서 두꺼비가 밑 빠진 독을 막아주듯, 거북과 두꺼비는 언제나 약자를 도와주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래서 마을 공동체는 바위를 통해 이 동물의 힘을 빌리며 안녕을 기원했다.

 

도원동 원덕마을 느티나무 당산

도원지 아래쪽, 옛 원덕마을 자리에 서면 수령 500년을 헤아리는 거대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권지둑 혹은 곤지둑이라 불린 둔덕이다. 전설에 따르면 권씨 성을 가진 이가 나무를 심어 ‘권시둑’이라 불리던 것이 세월이 흐르며 ‘권지둑’으로 변했다고 한다.


청룡굴과 돌무더기

 이밖에도 도원중·고 뒤편 우무구렁 동굴, 그리고 당산 아래 쌓여가는 작은 돌무더기까지. 도원동의 구석구석은 신앙과 전설이 이어지는 현장이다.


오늘날 도원동은 아파트와 도로로 풍경이 달라졌지만, 당산나무는 여전히 마을을 지키고, 상엿집은 옛 흔적을 간직하며, 청룡산의 바위들은 묵묵히 세대를 내려다본다.

선조들의 신앙과 전통은 그렇게 땅과 나무, 바위 속에 스며 오늘도 살아 숨 쉬고 있다.



※관련 영상은 푸른방송 유튜브 채널「달서야사」에서 볼 수 있다.

https://youtu.be/AFTMLMjFdPM?si=cOFR9K5m2wRdh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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