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보면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 보다 어렵다”고 되어 있다. 돈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을 도덕적으로 타락시킬 수 있고, 돈을 모으려면 이웃을 사랑하기 보다 수전노 노릇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나 한다.
불교에서 스님들이 맨발로 고행의 산길을 걷는 것도 물질의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요즘의 사회는 돈이면 사람 목숨까지도 살수 있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있다. 그러나 최소한 인간이 사는 데는 돈보다 중요한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돈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돈 때문에 퇴폐를 팔고, 돈 때문에 강도질을 하는 등 돈 때문에 못할 짓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중국 고대의 왕조 은(殷)나라의 주왕은 상아(象牙)로 젓가락을 만들어 썼다. 이것을 본 신하 가운데 한 사람인 기자(箕子)는 머지않아 천하에 화가 닥칠 것이라고 예언했다.
젓가락 하나로 천하의 미래를 점치는 것은 도무지 미덥지 않은 얘기다. 그러나 은나라는 그 예언대로 혼란에 빠져 멸망하고 말았다. 기자의 예언이 불행하게도 적중한 셈이다.
중국 춘추시대의 법률가 한비자(韓非子, ?~233)는 기자가 상아 젓가락을 보고 천하의 내일을 예견한 근거를 이렇게 설명했다. 상아로 젓가락을 만들게 되면 음식을 담는 그릇도 옥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옥으로 만든 그릇과 상아의 젓가락을 사용하면 그것에 맞추어 음식도 콩이나 푸성귀만으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코끼리의 고기, 표범의 창자 등 산해진미의 음식을 준비해 옥그릇에 담고 상아 젓가락으로 집어야 제격이다.
먹는 것이 이처럼 호사스러우면 입는 옷도, 사는 집도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만족할 수 없다. 비단옷을 걸치고 더 큰 궁궐에 살지 않으면 균형이 맞지 않는다. 상아 젓가락 하나로 인해 천하는 온통 사치와 낭비의 바다가 되는 셈이다.
한비자는 “성인은 티끌을 보고 낡은 것을 알게 되고, 작은 시작을 보면 그 종말을 알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누구에게나 사치하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사치와 오락은 재미있고 힘도 들지 않는다. 그러나 재미있다고 하여 사치와 오락만을 즐기다 보면 타락하는 것이다. 때문에 인간은 억지로라도 타락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락보다 땀흘려 일하는 것을 더 중히 여기고 사치보다 검소하고 절약하는 것을 더 가치있는 일로 보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가 미덕이라고 하지만 과소비는 경제적으로 가정이 파탄날 수 있고 가정이 파탄나면 국가도 부도가 날 수 있으므로 건전한 소비문화가 습관화 되어야 할 것이다.
구용회 건양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