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비림’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비석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공간을 숲에다 비유한 표현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구광역시에도 여러 곳에 비림이 있다. 경상감영공원·달성군청·고산초등학교·경북대학교 박물관·칠곡향교의 비림 등이 그것이다. 이중 규모가 가장 큰 비림은 우리 고장인 달성군청 앞마당에 조성된 비림이다. 경상감영공원 비림에 29기의 송덕비가 있는 반면 달성군청 비림에는 무려 42기의 송덕비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비림과 송덕비에 대해 한 번 알아보기로 하자.
2) 송덕비·불망비·선정비·거사비·애민비·혜민비
문화유적 공부에 있어 한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를 해도 부족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문화유적용어가 대부분 한자이기 때문이다. 송덕비·불망비·선정비·거사비·애민비·혜민비 등을 예로 한 번 들어보자. 보다시피 이렇게 한글로만 써놓으면 그 정체를 잘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한자를 옆에 써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덕을 칭송하고자 세운 송덕비(頌德碑), 영원토록 잊지 말자며 세운 불망비(不忘碑), 고을을 잘 다스렸다며 세운 선정비(善政碑), 떠난 이를 기억하자며 세운 거사비(去思碑), 백성을 사랑했으니 애민비(愛民碑), 백성에 은혜를 베풀었으니 혜민비(惠民碑) 하는 식으로 쉽게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한자 이야기는 이쯤하고 다시 본 주제로 돌아오자. 위에서 나열한 여러 비들은 이름만 다를 뿐 본래의 정체는 같다. 관찰사에서 고을수령에 이르기까지 목민관의 선정에 대해 백성들이 감사의 뜻으로 세운 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송덕비류의 비문에는 주로 주인공의 관직·성명·송덕의 내용 정도가 간략하게 새겨져 있으며, 대부분의 송덕비는 돌로 만든 석비지만 드물게는 철비(鐵碑)도 있다.
3) 옛날에는 ‘상국(相國)’이라는 이름이 많았다?
“쌤요! 관찰사 송덕비에 ‘상국’이란 이름이 왜 글케 많아예?”
실제로 몇 년 전 한 지인으로부터 받은 질문이다. 내용인즉슨 관찰사 또는 순찰사 송덕비에 유독 ‘상국’이라는 이름이 많더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관찰사김상국휘시형영세불망비·겸순찰사이상국경여거사비·순상국서공휘희순영세불망비·순상국김공휘도희영세불망비’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상할 것 하나도 없다. 여기서의 ‘상국’은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국이라는 말은 관찰사에게 붙이는 일종의 존칭어다. 김공·이공의 공(公)처럼 관찰사·순찰사에 대해서는 특별히 ‘상국’ 또는 ‘방백(方伯)’이라는 존칭을 붙였다. 이와 비슷한 예가 또 있다. 군수·판관·현령·현감의 송덕비를 보면 김후·이후처럼 ‘후(侯)’라는 이름(?)이 많다. 이 또한 존칭으로 군수·판관·현령·현감 등에 대해서는 상국이 아닌 ‘후’ 혹은 ‘공(公)’이라는 존칭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4) 오늘 이 도둑놈을 보내노라, 금일송차도(今日送此盜)
송덕비 관련해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어느 과천현감 송덕비 이야기’로 알려진 스토리다. 경기도 과천은 삼남지방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자리해 있다. 그런 만큼 과천 관아에는 고관대작들의 출입이 잦았다. 그래서 과천현감들 중에는 부당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아 고관들에게 인사청탁성 뇌물을 상납하는 자가 많았다. 또한 과천현감들 중에는 현감직을 떠날 때 유독 송덕비를 남기고자 하는 자가 많았다. 이는 과천이 사통팔달 교통의 요충지인 만큼 보는 눈도 많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느 과천현감이 임기를 마치고 고을을 떠나는 날, 자신의 송덕비에 뭐라고 새겨져 있는지가 궁금했다. 몰래 장막을 들추고 들여다보니 비에 다음과 같이 5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금일송차도(今日送此盜·오늘 이 도둑놈을 보내노라)’ 현감은 헛웃음을 한 번 짓고는 그 옆에다 ‘명일래타도(明日來他盜·내일 또 다른 도둑놈이 올 것이로다)’ 5글자를 새겨 넣고 고을을 떠났다. 그러자 한 고을 아전이 그 옆에다 5글자를 더 새겨 넣었다. ‘차도래부진(此盜來不盡·이놈의 도둑놈들은 끝이 없구나)’ 며칠 후 송덕비 앞을 지나던 한 선비가 비문을 읽어보고는 또 다시 5글자를 더 추가했다. ‘거세개위도(擧世皆爲盜·세상에는 도둑놈들 뿐이구나)
5) 현풍 공들고개 비림에서 논공 금포리 달성군청 비림으로
현재 달성군청 뜰에 좌우일렬로 길게 세워져 있는 비는 모두 42기다. 이 비들은 본래 현풍읍 성하리 ‘공들고개’ 달성군민체육관 옆에 있었다. 당시에는 모두 38기였는데 구쌍산과 비석걸이 등 현풍일대에 흩어져 있던 것들을 한자리에 모은 것들이다. 이 비들을 2016년 7월경 달성군청 뜰로 다시 옮긴 것이 지금의 달성군청 비림이다. 이전을 할 때 비의 위치는 본래의 순서대로 그대로 옮겼다. 그리고 38기였던 것이 42기가 된 것은 이전을 할 때 4기를 추가한 탓이다. 제1비석군은 순찰사·관찰사, 제2-4비석군은 현감, 제5비석군은 군수, 그리고 기타 비석군은 찰방·참봉·금부도사 등의 비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6) 에필로그
전통놀이 중에 비석치기놀이가 있다. 작은 돌들을 일렬로 세워놓은 뒤 다른 돌을 이용해 서 있는 돌을 쓰러뜨리는 놀이다. 비석치기놀이의 유래는 크게 ‘비석(碑石)’과 ‘비석(飛石)’으로 나뉜다. 전자는 길가에 세워져 있는 고을수령들의 송덕비를 고깝게 여겨 침을 뱉거나 돌을 던진 것에서 유래가 되었다는 해석이고, 후자는 비석돌을 향해 날아가는 돌[飛石]에 방점을 둔 해석이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를 떠나 전자와 같은 유래설도 있다하니 비림을 바라보는 마음이 마냥 편치만은 않다. 혹시 달성군청 비림 42기의 송덕비 중에도 비석치기의 타깃이 된 비가 있었을까?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