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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고 답하다] 마지막 전화
  • 푸른신문
  • 등록 2022-10-13 13:4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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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 부부가 겪은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어느 해 휴가철이었습니다. 사교계에서는 축제가 한창이었습니다. 부부가 어느 파티에 참석하려고 막 집을 나서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아들의 전화였습니다.
“엄마. 저예요. 베트남에서 군 복무가 끝나서 돌아가려구요.”
엄마가 물었습니다.
“정말 잘 되었구나. 그럼 집에는 언제 오니?”
“그런데 친구 한 명을 집에 데려가고 싶어요.”
“물론 괜찮다. 며칠 간 함께 지내렴.”
“엄마, 그런데 그 친구에 대해 미리 알아둬야 할 사실이 있어요. 다리는 모두 잘렸고 한 쪽 팔이 없어요. 얼굴도 심하게 손상되었고 눈과 귀도 한 쪽씩 잃었어요. 별 볼 일 없긴 하지만 쉴 곳이 꼭 필요한 친구예요.”
그의 어머니는 머뭇거렸습니다.
“쉴 곳이 필요하다고? 그렇다면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와서 며칠 같이 지내 거라.”
“제 말을 이해 못하시는군요. 전 그 친구와 같이 살고 싶다는 말이예요.”
“얘야, 그 친구와 함께 산다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다. 어서 와서 휴가를 함께 보내자. 그리고 그 친구 말인데 사정은 안됐지만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니? 또 뭐라고 설명 할 거니? 네 아빠에게나 친척들한테도…..”
이야기를 미처 끝내기도 전에 아들은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날 밤 부부가 파티에서 집으로 돌아 왔을 때 캘리포니아의 한 경찰서에서 전화를 달라는 메시지가 남겨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전화를 걸어 경찰서장을 찾았습니다. 경찰서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길에서 한 젊은이를 발견했습니다. 두 다리와 한쪽 팔이 없고 얼굴은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죠. 눈과 귀도 한쪽 씩 없었는데 머리에 총을 쏘아 자살했더군요. 신원을 확인해보니 당신의 아들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합니다. 물론, 이와 같은 경우에 무조건적인 수용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아들이 말 한 친구가 자기의 아들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쌍한 젊은이를 받아들이는 넓은 가슴이 있었다면 그 아들의 전화가 마지막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물론, 아들과 엄마의 통화 과정에서의 소통에 대한 문제도 있습니다. 아들이 엄마에게 상황 설명을 좀 더 설득력 있게 했으면 하는 것과, 엄마가 아들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좀 더 이해하려고 했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그것입니다. 소통이 되지 않으면 고통이 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구용회 건양사이버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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