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과 평범한 한국 직장인의 업무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할까.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이다. 미국 대통령은 세계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자리다. 정답은 뻔하다. 그렇다면 양쪽 중 어느 쪽이 가족과 저녁 식사를 더 자주할까.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무게만 따지면 당연히 한국 직장인일 것 같다. 미국 대통령은 참모들과 함께 온갖 중대한 이슈를 검토하지 않는가. 가족과의 저녁은 후순위로 밀릴 것 같다. 그런데 사실은 정반대다. 미국 대통령은 오후 6시 30분이면 가족과 저녁식사 테이블에 앉는다.
조디 캔터 뉴욕 타임스 기자가 펴낸 ‘오바마 가족’에 따르면 그렇다. 이 책에 따르면 오바마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남들과 저녁을 먹는 일은 많아야 주 2회였다. 식사 후에는 딸의 숙제를 돕는다. 이런 내용을 종합하면 오바마 대통령은 ‘저녁이 있는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매일 야근과 이어지는 술자리로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을 빼앗긴 한국 직장인들에게는 꿈같은 얘기다.
그렇다면 한국 직장인들은 미국 대통령보다 훨씬 사소한 일을 하면서 왜 저녁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잘못된 직장 문화 탓’이 아닐까 한다. 야근을 당연시 하고 야근하는 사람을 열심히 일하는 직원으로 인정하는 문화가 아직도 잔존한다는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러나 야근이 많으면 많을수록 직원들은 지칠 수밖에 없고, 그래서는 혁신이 나올 수 없다. 저녁이 없는 삶은 성과 향상을 방해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한국인들은 오래 일할 뿐 열심히 일하지는 않는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업무에 몰입하는 직원의 비중이 11%로 세계 평균(13%)에 미달했다. 반면 대충 일하는 직원은 66%, 업무 방해형 직원은 23%였다. 이래서는 혁신과 창조가 어렵다.
가족을 멀리하며 직장에 시간을 쏟는 인생은 불행할 가능성도 높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가 말했듯이 “가족과의 유대는 지속적인 행복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는 “많은 하버드 경영대학원 졸업생들의 인생 전략은 불행을 향하고 있다”며 “동문회에 나오는 졸업생을 보면 이혼 또는 자녀와의 관계 단절로 불행해지는 사람이 해마다 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지금 한국 직장인의 인생 전략은 어떤가. 혹시 저녁을 빼앗긴 삶을 살면서 업무 성과도 떨어지고 가족과의 관계도 끊어지는 ‘이중 불행’의 전략은 아닌지 자문해 볼 일이다. 야근을 해야 한다면 ‘미국 대통령도 집에서 저녁을 먹는데…’라는 주문을 외워보는 게 어떨까.
물론 상사는 싫어하겠지만.
구용회 건양사이버대학교 교수